어찌하여...

2019.01.04 07:29

박상형 조회 수:14

어찌하여...(막21~12)


예수님이 가버나움의 어떤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계셨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방해가
예상되기에 아주 충분한 일이 벌어졌다.
지붕을 뚫고 매달려 내려온 중풍병 환자에 의해서...


전하시던 말씀이 잠시 끊어지고
모든 무리의 이목이 집중된 이 시점에
예수님이 뜬금없이 던지신  한 마디는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 이었다.
(3)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왜 예수님은 네 병이 다 나았다는 말 대신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을 하신 것일까?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하는 율법학자들의
즉각적인 반발을 예상하셨으면서도 말이다.
(6)율법학자 몇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기를
(7)이 사람이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한단 말이냐? 하나님을 모독하는구나. 하나님 한 분 밖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 하였다.


예수님이 전하시던 말씀이 두번이나 꺽여졌다.
지붕뚫고 내려온 중풍병자에 의해서
율법학자들의 속 마음에 의해서 또 한 번,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이 중단된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실까?


만약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네 자리를 걷어서 집에가라고 말씀하셨다면
이들은 어찌하여란 말 대신에
예수님이 하신 말의 결과를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집에서 전하시던 말씀은 잊혀져 버렸겠지


어찌하여 이들은 예수님의 뒷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즉각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까?
그 부정적인 반응이 잘못되었을 경우에 처하게 될
창피함은 신경쓰지 못하고...


어찌되었건 예수님이 전하시는 도의 말씀을
꺽으려던 그들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죄를 사해주시는 말씀의 본질에
직면하게 되었다.


저들의 반응이 부정적으로 나올 것을
알면서도 그런 말을 먼저 던지신 것을 보면
그것들이 말씀에 방해가 되기 보다는
도구가 되리란 것을 알고 계신 듯 하다.


예수님이 병나음 대신에 죄사함의 말을 던지신 이유는
자신의 권세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그 권세는 죄를 사하는 권세이고
그 권세는 하나님의 말씀이 결코 어떤 것에 의해
끊어지지 않는 권세이었다.


예수님은 부정적인 무리들에게,
저들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된 말씀인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을
무리들이 검증할 수 있도록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가라는 말씀을 덧 붙이셨다.


예수님이 무리들에게 기적을 보여주셨지만
그 기적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은 끊기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병 고치는 권세를 사용하시어
자신이 권세있음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하나님의 권세가 있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병을 고쳐 주셨다.


하나님의 권세는 말씀에 있는 것이지
병고침에 있는 것이 아니다.
병고침에 이목이 집중되어짐으로,
병고침은 하나님의 말씀을 끊으려 했지만
예수님은 더 강력한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어가신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에게 병 고침의 권세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용서받는 것이 더 먼저이며
그러므로 죄를 용서받도록 예수께 인도하는 것이
교회의 목적이지, 병 고침이 아니라는 것이다.


말씀은 끊겨도 병 고침이 우선이라면 그건 아니다
병 고침이 없더라도 말씀은 끊기지 말아야 한다.
말씀이 끊기지 않는 것이 예수님표이다.


병 고침이 당장 필요한 환자가 예수님에게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다면 그는 예수님표이다.


아내의 병 고침을 위해 기도하다가 예수님을 만났다.
그로부터 십여년이 지난 후에 아내의 병이 나았다.
그러나 그것만이 내 믿음의 내용이라면
아내의 병이 다시 생기면 나는 믿음을 반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 내 죄가 용서됨을 알았고
그 죄가 빠져나간 자리에 말씀이 들어오셨다.
그리고 그 말씀은 이제 아내의 병과 상관 없이
내 안에 자리를 잡고 계신다.
20여년이 넘도록...


얼마 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
머리가 빙빙돌아 어지러웠지만
눈을 감고 있으면 그나마 나아서
눈을 감고 말씀을 묵상했다.
힘들었지만, 잘 안되었지만 묵상을 안하면
더 힘들고 죽을 것 같았다.


이제는 안다.
이제는 느낀다.
말씀이 빠져나가면 안된다는 것을...


어떤 무엇이 내 안에 들어와도
설령 그것이 내 삶을 연장시키는 기적이라도
말씀을 빼내는 것이라면
말씀이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라면
단호히 거부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말씀없이 내 삶은 없다.
어찌하여 말씀보다 다른 것을 앞에 둘 수 있다는 말인가?
(2018. 01. 04.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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