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고 늘어지기

2018.12.29 06:59

박상형 조회 수:15

<style type="text/css"> p.p1 {margin: 0.0px 0.0px 0.0px 0.0px; font: 11.0px 'Apple SD Gothic Neo'; -webkit-text-stroke: #000000} p.p2 {margin: 0.0px 0.0px 0.0px 0.0px; font: 11.0px 'Apple SD Gothic Neo'; -webkit-text-stroke: #000000; min-height: 13.0px} span.s1 {font-kerning: none} </style>

붙잡고 늘어지기(대하35:20~27)



요시아왕이 죽었다. 아주 허무하게...

다윗과 솔로몬이래로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 것으로 평가 받던 왕 이었는데, ‘

요시아왕의 죽음에 뭔가 선역치 않은 것이 

있어 보인다.



성전을 잘 정돈하고 유월절 행사를

누구보다도 더 잘지킨 후에 

하나님의 명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하러 가던

이방나라 왕과 싸우다가 죽었다.

죽는 모습도 천하의 악당 아합왕의 죽음과 닮았다.

요사아왕의 믿음과 죽음이 연결되지 않는다.



(20)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성전을 잘 정돈한 뒤에 이집트 왕 느고가 유프라테스 강 가에 있는 갈그미스를 치려고 올라왔습니다. 요시야는 그를 맞아 싸우러 나갔습니다.

(21)느고는 요시야에게 사람을 보내 말했습니다. “유다 왕이여, 왕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겠소? 내가 이번에 치려는 것은 왕이 아니라 나와 싸우는 그 족속이오. 하나님께서 나로 속히 하도록 명령하셨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하나님을 막는 짓을 멈추시오. 그래야 하나님께서 왕을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이오.”



성경은 요시아왕의 죽음이 일어난 사건을

이 모든 일 후에라고 말한다.



이것은 성전을 잘 정돈한 일과

요시아의 죽음이 연관이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성전을 잘 정돈한 일이,

비록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만한 그 일도,

요사아의 헛된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것은 성전을 잘 정돈한 요시아의 믿음이

죽음과 연결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요시야가 성전을 잘 정돈하면서 자신의 믿음까지

잘 정리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것은 믿음은 끝까지 잘 지키기 힘들 것임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사인일까?



말씀대로 따라한 요시아였기에

말씀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모범을 보여준 사람이었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왜 요시야는 이방인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었을까?



말씀이면 족하다는 말은

말씀에 민감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성경안에서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성경안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갇혀 있는 분도 아니다.

하나님은 돌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어디서든 누구를 통해서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들어야 한다.



왜 요시야는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니

길을 막지 말라며 싸움을 피하려는 이방인왕의 말을 무시하고

거짓 변장까지 하고 굳이 싸움을 하려고 했을까?

그 말을 확인해보려는 시도는 왜 하지 않았을까?



말씀만으로 족하다는 말은

다른 이의 말을 확인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내가 높아져 있다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요시아는 성전을 잘 정돈 한 후에

마음이 높아져 버렸고, 그리고 그 높아진

명성을 유지하고 더하기 위하여 싸워

승리를 얻으려고 한 것 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요시야는 강한 이집트의 왕 느고와 싸우기 전

하나님에게 물어보지 않았을까?

하나님이 알아서 도와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말씀만으로 족하다는 말은

하나님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요시아는 다윗이 한 일은 본 받았으면서

늘 하나님께 물어보던 다윗의 믿음은 왜 본받지 

못한 것일까?



부서 송년회를 참석했다.

거의 참석하지 못했던 회식이었는데

반년만에 참석한 회식이었지 싶다.



모든 직원들이 나를 보고 한 말은

아프지 않을 사람인데,

아픈 짓을 하지 않을 사람인데,

아픈 것이 이상하다는 말이었다.



아니다. 

직원들이 나를 너무 좋게 보고만 있었다.

나는 아픈 짓을 하지 않을 그런 위인이 못 된다.



나는 요번 아픔을 하나님의 경고로 들었다.

하나님을 위해 그 정도로 수고하며 살았으면

요런 정도의 죄는 이해해 주실것이라는

내 물음에 대한 대답말이다.



“그렇게는 안된다~~~”



내 사전에서 이 모든 일 후에 라는 말을 지운다.

이 모든 일을 하다가 라는 말만 있을 뿐이다.

내 믿음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 믿음의 여정에 은퇴란 없다.

그 여정은 죽을 때 끝나야 한다.



이 모든 일 후에라는 말을 듣고도 내가

살아있지 않기 위해 

오늘도 일어나자 마자 말씀을 붙잡고 늘어진다.

(2018.12 29. 토요일)


카페 정보

회원:
3
새 글:
0
등록일:
2016.12.07

로그인

오늘:
6
어제:
5
전체:
69,115

신입 회원 소식

게시글 랭킹

댓글 랭킹

현재 접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