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보는 갓난아이

2018.12.24 07:11

박상형 조회 수: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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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갓난아이(눅2:1~38)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가지시고서...



그런데 그 표적이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한 갓난아이이다.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아니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가지고 오신 분의 표적이 고작 한 갓난아이라니

그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천사는 왜 이것을 표적이라고 했을까?

세상을 구원할 이가 오신 표적이라면

아무리 못해도 마른 하늘에 천둥이 치고

번개로 하늘에 엑스자를 몇번 정도는 그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기껏해야 야밤에,

그것도 그 지역에 사는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만 천군천사가 나타나서는

한 갓난아이를 찬송하는 것으로 정말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말인가?



그러니 유대인들이 안 믿지,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개로 오천명을 먹여도 못 믿는데

어떻게 포대기에 싸여 누워있는 

한 갓난아이를 표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그래서 믿음이 정의 된다.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보는 것이라는...

보고 믿으려면 안 보이지만 믿고 보면 보인다는...

보고 믿으면 말씀이 이해가되지 않지만

믿고 보면 말씀이 실타래 풀리듯 풀려나간다.



신실한 믿음의 형제 두 사람과 어제 저녁 식사를 했다.

한 형제는 전부터 알고 있었고

한 형제는 남쪽에서 동해로 전근을 온 형제였다.



만나기 전에는 나의 강원도 사역에 동력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살짝 했었는데

정작 그들을 만나고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간혹 만나 식사나 하자는 것이었다.



한 공간에 있다는 것 만으로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이지

무엇을 해야 힘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내 마음에 들렸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 형제들이 묻지도 않은 말에 고백을 해 온다.

내가 정기적으로 만나자고 하면,

내가 같이 사역을 하자고 푸시해 오면,

적당히 거절하려고 했었다면서...



예전의 만남 같았으면 우리 만남속에는

쉬지 않고 뛰어다니는 어린아이 예수가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양손에 불을 든 청년 예수가 있었던지...



그런데 이번의 만남에는

포대기에 싸여 있는 한 갓난아이가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니 하지 않아도 되는...



무엇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닌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참 믿음을 경험한 자리였다.

그리고 든든 했다.

이런 형제들을 알고 있다는 것이...



밥은 내가 사기로 하고 가끔 만나자고 했다.

힘이 들면 서로 연락하자고 했다.

카톡방을 만들어 묵상말씀만 나누자고 했다.



돌아가는 발걸음들이 가벼워 보인다.



이제 포대기에 싸여있는 한 갓난 아이가

주시는 음성에 귀 기울여야지.



그것이 비록 아이의 울음소리뿐 일지라도

그 분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니...

(2018.12 24.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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