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은 선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 착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크리스천인 우리보다 훨씬 더 나아 보이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도대체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행위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 의문에 대해서 금방 떠오르는 성경구절은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선행 때문이 아니라는 말씀이다(엡 2:8-9).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 받은 우리가 선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에게 선행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에 대해서 에베소서 2장 8-10절은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선행에 의한 것(by)은 아니다(“하나님의 선물”).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선행을 위함(for)이다(“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 우리가 선한 일을 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헛되이 하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가 구원을 받고도 선한 일을 하지 않는 것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헛되이 하는 것이다. 바울은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고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인간의 선행의 가치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사람이 아무리 선한 삶을 산다고 해도 사람의 죄악된 본성을 스스로 깨끗하게 할 수 없다. 기껏해야 더러운 물이 담긴 양동이에다 깨끗한 물 한 바가지를 붓는 것에 불과하다. 사람은 죄로 인해 죽었고 사람들은 전적으로 더러워졌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 일을 행하기 어렵고 혹 선행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롬 3:23). 사람들의 죄 문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살아나셨기 때문에 해결되었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행위에 관계없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후 5:17). 이것이 복음이다.
 

믿지 않는 사람은 선행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크리스천들도 있다. 아마도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2)라는 말씀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양심을 주셨으므로 그 양심에 따라서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롬 2:14-15). 더러운 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지만 그 속에서 선행이라는 깨끗한 물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선행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유익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보편적 도덕이나 윤리를 우리가 가르침 받거나 그것으로 권면할 필요도 있다. 그것이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주시는 선물, 즉 일반은총이다. 그러나 그 어떤 고귀한 도덕적인 행동도 구원을 얻게 하는 데는 형편없이 부족하다. 아니 불가능하다. 만일 누군가가 도덕적인 행동을 가치 있게 여겨서 그것을 구원의 조건이나 도구가 된다고 말한다면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결코 도덕적인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를 도덕적인 종교로 말하는 순간 기독교의 복음은 사라지고 말며 복음이 없어진 기독교는 이미 기독교가 아니다.
 

하지만 성도의 선행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선행보다 더 귀한 가치를 담고 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선한 삶을 살려고 애써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에 선행을 할 능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선한 삶으로 죄악 세상에서 구별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바로 구원받은 이들이 선행을 하도록 하기 위함임을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엡 2:10).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선행을 못하고 오히려 죄를 짓거나 세상 사람들보다 더한 물의를 일으키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구원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죄악도 하나님은 한번 주신 영생을 자녀들에게서 빼앗지는 못한다(요 10:28-29). 그러나 믿는 사람들이 선행을 하지 않으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엄청 슬프게 만든다. 그의 대속의 죽음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우리의 선한 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마 5:16). 그러므로 선행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필수적인 의무이다.
 

이렇게 기독교는 도덕의 종교가 아니지만 기독교는 도덕과 윤리의 실천을 가르친다. 기독교에서 도덕이나 윤리를 빼어버리는 것 역시 복음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선행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것이 없다. 구원에 있어서 선행이 믿음을 대신하지 못하지만 선행이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만든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한 것이다(약 2:26). 크리스천이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 뿐 아니라 믿음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은 선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방선기 목사(직장사역연구소 소장, 이랜드 사목), 기독신문 2011년 1월 12일자 기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