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만남

2018.06.29 06:56

박상형 조회 수: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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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만남(행10:17~33)



믿음의 사람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와

믿음의 사도 베드로가 만난다.



믿음의 사람은 어떻게 만나는 것일까?

어떻게 만나는 것이 믿음의 만남일까?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만남에는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다.

두 사람의 만남에는 성령님의 인도가 있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청하라는 천사의 말을

그를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지시로 이해했다.



그는 베드로가 언제 올지 또는 안 올지, 정확한

날짜를 알지 못했으나 친척과 친구들을

불러놓고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인들과 같이 온 베드로를 본 고넬료는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들으려고 

하나님앞에 나와 있다고 말한다.



단순한 이방인과의 만남이 아니다.

이 만남은 실패할 수 없는 만남인 것은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고

성령님이 만나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전에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했던 만남이

실패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



오늘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을 보며

나의 만남을 비교해보니 두 가지 면에서

잘못된 것이 발견되었다.



첫 번째는  

성경공부 모임장소가 너무나 쉽게 구해진 것이었는데,

일산에살던 나에게 강릉이 낮선 곳이기도 하였고

또 자원해서 온 곳이기도 해서

성령의 도우심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너무나 쉽게 구해지는 바람에

그것이 우연의 일치인지를 모르고

성령님의 인도로 착각한 것이었다.



이것이 그러한가 하는 확인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당시 묵상을 안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했는지 다시 한번 살펴봐야 겠다.



두번 째는 말씀의 갈급함이 아닌

장소의 갈급함만 더 컸다는 것이었다.



다시말해 성경적인 갈급함이 아닌

세상적인 갈급함이 더 앞서 있었고

그것이 저쪽과 맞아떨어지자 앞뒤 확인도 없이

덮썩 물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말 다행인 것은 그 잘못된 만남으로 인해

다시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생겼고

내가 지금 만난 연합교회는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말씀의 갈급함에 의해 목사님을 만났고

말씀의 갈급함이 있는 성도들이 모여

교회를 이루었다.



비록 환상중에 성령님이 나타나시는 일은

경험하지 못했지만

이 일에는 성령님의 중매가 있음을 믿는다.

왜냐하면 세상의 갈급함이 아닌

말씀으로 만났기 때문이다.



나 또한 강릉에서 말씀사역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말씀이 필요한 사람들, 

말씀이 갈급한 사람들을 징모하고 있다.



말씀이 중심이 되지 않을 때에 잘되는 것은

잘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역시 인원은 소수다.



하지만 말씀으로 만나지 않은 사람들은

허수임을 알기에 소수건 홀수건

그곳에 말씀으로 집중할 것을 성령님과 믿음의

사람들 앞에서 약속해 본다.

(2018. 6. 29.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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