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장님

2018.06.24 08:11

박상형 조회 수:69

눈뜬 장님(행9:1~9)


주의 제자들을 죽이기 위해 기세등등한
사울(후에 바울)의 발걸음을 예수님이 막으신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것은
자신을 박해하는 것이라 말하시면서


(3)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5)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6)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그러면 그냥 죽이시면 될텐데
죽이실 때 죽이는 이유를 말해주시고
주변까지 겁을 주면 되실텐데
왜 일반상식과는 전혀 안 맞는 
눈이 멀게하는 방법을 사용하신다.


그리고 바울이 할 일을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일러줄 사람이 있다고 하신다.


왜 이러시는 것일까?
왜 즉시 죽이시지 않고 일단정지, 잠시멈춤을
사용하시고,
왜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 말씀하시려는 것일까?


하나님은 주의 제자들이 당하는 고난과
핍박을 알고 계셨다.
알고 계셨으면서도 그 고난과 핍박을 즉시
멈추어 주시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그 길을 가셨고
그 길만이 구원의 길이었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라면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라면
고난과 핍박을 잘 해석해야 한다.


알고 있지만 멈추어 주시지는 않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제자인 선교사가 재정이 어려워지자
그를 돕기 위해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 유명한 스타목사님이 있다.


그 분을 존경하고 있지만 그 분의 방법은
어쩌면 하나님의 방법인 고난과 핍박을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두가 환호하며 동조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방법을 가로막는 것 아니냐는
소수의견을 드렸는데 역시 무시당했다.


잘 사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기독교이다.


잘 살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잘 사는 기준이 변한다.
좀 부족하게 살아도 좀 없이 살아도 기뻐할 수 있다.
좀 부족해야 좀 없어야 하나님이 채워주시지 않을까?
풍족하게 가진 그에게 하나님이 하실 일은 더 이상 없다.


하나님은 바울을 잠시멈추시고
사람을 통해 할 일을 일러주신다.
하나님은 잠시 멈추시고
사람을 통해 도와주시라고 했다고 해석하면
정말 안 좋은 해석이다.


바울이 눈을 못 뜬 것이 아니었다.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8)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시려고
이러신 것일까?


바울이 사흘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그동안 자신이 눈 뜬 장님이었음을
묵상하고 깨닫는 시간이었지 싶다.
(제발 금식기도 했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왜 바울을 죽이시지 않았는지
예수님과 스데반이 왜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눈 뜬 장님이었으니까!
눈을 다시 뜨게 하려고!


내게도 안 떠진 눈이 많이 있다.
이런 말씀들이 이제야 보이니...


안 떠진 눈이 살짝 떠진 기쁨을 느껴본다.
주일 근무를 위로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로 받으며 일을 시작한다.
오늘 할 일 많다.
(2018. 06. 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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