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거역하는 일

2018.06.19 07:05

박상형 조회 수: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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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거역하는 일(행7:37~53)



스데반이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역사를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그가 말한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악하면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이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늘 거역한 부끄러운 현실이었다고,



그러므로 부끄러워 해야하며

부끄러워 하지 않으면 또 다시

그 길을 걸아야 할 것이라고 말이다.



오늘은 충격적인 말씀이 발견된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짓길 원했지만

짓지 못하고 솔로몬이 대신 지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다는,

그것이 성령을 거역하는 일이었다는...



(49)주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이 내 보좌이고

 땅이 내 발판이다. 그런데 너희가 나를 위해 

무슨 집을 짓겠느냐?

또 내가 쉴 만한 곳이 어디 있겠느냐?

(50)이 모든 것을 다 내 손으로 만들지 않았느냐?

(51)목이 곧고 마음과 귀가 꽉 막힌 사람들이여, 

당신들도 여러분의 조상처럼 계속해서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당신의 보좌이고 땅은 하나님의 발판이다.

이 모든 것을 만드시 분이 하나님이다.

그럼으로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집에 거하시지 않는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짓는다면

그것도 아주 화려하고 아주 크게 짓는 다면

그것은 아주 많이 성령을 거역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어디에도 계시는 분이다.

그러나 크게 지은 교회가 화려하게 지은 교회가

하나님의 무소부재를 가르쳐야 할 교회가

오히려 그것을 가로막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교회가 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것 역시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은 어디에도 계신다.

하나님은 말씀이다.

하나님이 어디에도 계신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말씀을 먹어야 한다.

말씀을 먹어 맛을 보아야 한다.

말씀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다윗이 하려던 일이, 솔로몬이 한 일이

성령을 거역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불편하게 들려야 한다.

불편해야 부끄러워진다.

부끄러워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있다.



교회는 하나님을 교회안에 가두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예수님이 얼굴이 수건에 가려지고 수족이 묶인 

나사로를 풀어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풀어드려야 한다.



예수님이 풀어놓으신 것을

교회가 다시 묶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여전히 교회가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짓고 있는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는 것임을 

알고 있을까?



교회의 할 일은 집을 짓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이어야 한다.

교회가 크기와 숫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한

결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풀어주는 일을

해야 한다.

말씀이 풀어지고 말씀이 들어가면

세상이 세상 답게 될 것이다.

교회가 교회답게 될 것이다.



세상도 교회도 말씀으로 지어졌으니까!

(2018. 6. 19.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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