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를 드리는 마음 (신26:12-19)
2011.05.19 23:44
12 제삼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서 네 성문 안에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쓸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물, 능력을 사용해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때 정말 삶의 보람을 느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초적으로 주신 마음이다. 하나님이 소산의 십일조를 내어서 어려운 사람을 먹이라고 하신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도와서 행복감을 느껴 보라고 하신다. 10의 9는 달리 말씀이 없으니 내가 써도 좋다는 뜻이다. 온전한 10의 9가 내게 있으면 나도 부족함 없이 배부를 수 있다. 레위인, 객, 고아, 과부, 나 모두가 배부르고 행복하다. 이는 십일조가 온전해야 하고, 또 내 몫으로 남은 10의 9가 온전해야 한다. 만일 십일조를 드리기 전에 이미 소득의 절반이 사고나 세금이나 빚의 이자로 날라가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가 없을 것이다. 부족함을 느낄 것이고 이 마음이 십일조를 주저하게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십일조에 묻어있는 마음을 보실 것이다. 절대적인 부족함 속에서 망설이다가 겨우 드리는 마음, 쓰고도 남을 만큼 넉넉하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드리는 마음, 절대적인 부족함 속에서도 감사함으로 드리는 마음, 비어있는 소쿠리를 보면서도 하나님은 십일조 못하는 마음을 읽으신다. 못하는 그 마음이 편치 못하고, 떳떳이 십일조 할 수 있기를 원한다는 것을 아신다. 어느 비어있는 소쿠리의 주인은 십일조를 가지고 오다가 불쌍한 과부를 만나 그에게 다 주어버렸다. 과부에게 주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이 과연 그 과부를 채워주실까? 과부가 눈에 띄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도우라고 보여주신 것이 아닐까? 하나님은 물질이 필요하지 않으시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인데, 눈 앞에 있는 가난한 과부는 절박하다. 십일조 드리는 것을 포기하고 그것을 과부에게 주는 것은, 나를 위하는 행위를 포기 하고 과부를 위하는 행위를 한 것이 아닐까? 그 마음도 하나님이 아실 것이다. 절대적인 부족함 속에서도 우리는 조금이라도 가진 것이 있다면 어려운 이웃과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절대적인 부족함 속에서 원초적인 온전한 십일조는 드릴 수가 없다. 100 에서 내가 지킬 수 없는 항목으로 날라간 것이 90 이라면 남은 10 의 십일조인 1을 드릴 수는 있어도, 100의 십일조인 10을 드릴 수는 없다. 이렇게 계산하고 있는 마음도 하나님은 보고 계신다. 주님이 우리의 마음을 늘 풍요롭게 다루어 주셔서, 없는 가운데에서도 즐겨 나눌 수 있기를 원합니다. |
주님! 주님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1. 아내의 필요에 대해 구할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