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없는 내 계획이 포기되기 위해(롬9:1~13)

 

 

바울이 그리스도에게 떨어져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라는 말을 한다.

 

 

바울이 이 말을 한 것을 근거로

어떤 사람들은 구원이 물려질 수 있다고 말한다.

 

 

바울의 이 말이 과연  구원이 물려질 수 있음을

시사한 말일까?

그리고 정말 구원은 물려질 수 있는 것일까?

 

 

1. 구원이란?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의 선물이다.

내가 요구해서 받은 것이 아니고 달라고 한 적도 없다.

그런데 주셨다. 그래서 은혜라고 한다.

 

 

그것이 물려질 수 없다는 것은

그 구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인데,

만약 구원이 물려질 수 있다면

그것을 주신 하나님보다 크거나 최소한 하나님의 능력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리아시고 미리계획하셨으며 미리결정하신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어떤 행위로 물려진다면 그 하나님은 미리 아시는 분이 아니다.

 

 

다시말해 물릴 수 있는 사람의 조건은 없다는 말이다.

구원이 물려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헛된 구원의 확신을 경계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함부로 할 말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2. 바울의 큰 근심

 

바울에겐 큰 근심이 있었다.

자신의 동족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동족들이 예전의 자신처럼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정작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동족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하나님을 진짜로 아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

그래서 동족이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바울의 큰 근심이었다.

 

(3)만일 내 동족이 구원만 얻는다면 내가 저주를 받아 그

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기서 떨어져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라는 말은

‘미완료 시제동사형’으로 

가능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라도 하고 싶다는 뜻이지 

진짜로 떨어질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고 한다.

 

 

떨어질 수 없기에 이런 말을 한 것이며

떨어질 수 있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은 흉내를 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생명을 받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3. 약속의 자녀라야

 

약속의 자녀의 반대는 육신의 자녀이다.

약속의 자녀는 육신이 죽은 자에게서 난 자녀와 그 씨이다.

(8)이것은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라야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다는 말입니다.

 

 

육신이 죽어야 약속의 자녀가 된다.

 

또 아브라함의 씨라고 할지라도,

율법을 가진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는 조상이 있다해도,

그리스도를 육신의 조상으로 모시고 있을지라도 

그들 모두가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

말씀으로 약속된 자녀여야 한다고 말한다.

 

(7)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다 그의 자녀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서 난 사람이라야 

네 후손으로 인정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약속의 자녀는, 

태어 나지도 않았고 또 그가 어떤 일을 행하지도 않았을 때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뜻에 의해 태어난 씨앗이다.

 

(11)아기가 아직 나기 전,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을 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에게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선택의 표준이 행위에 있지 않고 그분의 뜻에 있음을 나타내시려는 것이며

 

 

약속의 자녀는 미리 택하심을 따라 되었지만

날짜가 정해진 것이 아니며

오직 부르시는 하나님께 모든 권한이 있다.

 

 

4.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나는 내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목적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 그리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알게 된 아브라함이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죽은 몸이 살아난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능력으로 이삭을 잉태함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결과를 자신에게 시행하신 것을 깨닫게 되었던 것처럼...

 

 

그 하나님의 목적이 기록된 바에 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말씀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말 어리석은 일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도 모른체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바로처럼... 

 

 

내 계획은 모두 형편없음을 알기에

나는 하나님의 계획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므로

오늘 내게 들려주실 주님의 계획을 듣고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졸린 눈 비벼가며, 연신 하품을 해 대며

기록된 말씀 앞에 앉아 있다. 

(2020. 8. 12.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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