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들어오신 죽음

2018.03.31 07:05

박상형 조회 수: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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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들어오신 죽음(요19:31~42)



부음 통지서가 왔다.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고...



“가봐야 하나?”



어떻게 돌아가셨데?

유대인들의 궤계로 인해 로마군인들에게 잡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6시간만에 죽으셨데.



“그래? 호상은 아니네”



그런데 왜 그렇게 돌아가셨데?

나를 구원하기 위해 죽으셨데.

그 분이 죽어야 하나님뜻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분이 죽어야 내가 사는 것이라는군.



그러면 울고만 있을 일이 아니네

오히려 감사할 일이잖아.

고마워 문상에 도움이 되었네.



예수님의 죽음은 목적이 있었다.

죽음은 모두 슬프지만

목적 있는 죽음은 그 자체만 보고 슬퍼만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그분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은

그 죽음의 목적에 부합한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삶이다.

그분의 죽음으로 내가 얻은 새 삶이다



이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세상의 사고방식을

다 버리고 하늘방식으로 사는 삶 말이다.



슬퍼서 펑펑울기는 하는데

실컷 울고 나서는 계속해서 세상방식대로

사는 사람은 예수님의 죽음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단지 일반 문상객일 뿐이다.


니고데모와 요셉이 가장 먼저 문상에 참여한다.

서슬퍼런 로마와 유대인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가장먼저 찾아오다니 용감하다.



그리고 충분한 장례용품과 장지까지 제공을

했으니 정성이 대단하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그일만 하고 돌아간다면

일반 문상객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의 죽음에는 목적이 있었다.

그 목적을 알고 문상을 해야 한다.

그 목적이 나를 살리기 위한 것임을 알고 

문상을 한다면 그는 문상객에서 상주가 된다.

예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이다.



슬프지만 슬퍼해야만 할 일이 아니다.

슬프지만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이 문상으로 가족인지 아닌지가

나뉘어 질테니까!



니고데모와 요셉의 행위는 칭찬받을 만한 일 

이었지만 그것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눈물흘리면서도 감사할 수 있다면,

그 감사에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되었다.



지금부터 나를 버리는 일 하나씩 하면 된다.

버리는 만큼 채워지는 것을 확인하면서



예수의 죽음이 나에게 들어오신다.

나도 예수 처럼,

나도 예수 따라서 그렇게 살고 그렇게 죽으라고

하시는 가 보다. 

지금처럼 살면 안되는 가 보다

(2018. 03. 3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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