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이 지은 성전

2018.10.28 07:34

박상형 조회 수:44

<style type="text/css"> p.p1 {margin: 0.0px 0.0px 0.0px 0.0px; font: 11.0px 'Apple SD Gothic Neo'; -webkit-text-stroke: #000000} p.p2 {margin: 0.0px 0.0px 0.0px 0.0px; font: 11.0px 'Apple SD Gothic Neo'; -webkit-text-stroke: #000000; min-height: 13.0px} span.s1 {font-kerning: none} </style>

이방인이 지은 성전(대하2:11~18)



성경의 인물들에게서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할까?

긍정적 교훈?

그래서 나도 저들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이 한몸 불태워가며 주의 나라의 완성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하는 것일까?



아님 부정적 교훈?

하나님을 위해서 어줍잖게 무엇을 하려고 하기 보다는

저들이 범한 실수나 잘못을 나 역시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저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가면서

애통해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20여년동안 묵상기간중 거의 대부분 

긍정적 교훈의 묵상을 한 듯 싶다.

하지만 최근의 묵상들은 부정적 묵상으로

치우쳐지는 듯하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말씀이 눈에 보이는 대로 

말씀이 생각을 두드리는 대로 하는 것 뿐이다.



앞으로의 20년이 나의 후반기 사역이라면

그 내용은 더하기보다는 지키기가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물론 앞의 20여년도 특별히 한 것 없지만

지금부터는 더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읽혀지기 보다는 지키기를 바라시는 마음이 더 

전해진다고 할까?



더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 믿음이니까!

더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고

지킬 일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그러니 하나님의 일 보다는 내가 할 일을 더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많은 부분을 더하셨는데

하지만 그렇게 더하기만 하다가 지키지 못하고

넘어지는 분들을 많이 봐서 그런가?



아무튼 오늘도 더하기 보다는 지키기로 간다.



하지만 솔로몬은 지키기보다는 더하기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성전건축을 위해 인력과 물자를 보내달라는

솔로몬의 편지를 받은 두로왕 후람이 답장을

보내온다.



내용인 즉슨 

다윗왕은 좋겠다 이런 훌륭한 아들을 두어서,

당신들의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다.

성전건축을 하려는 마음을 보시고, 

내 당신이 원하는 것은 다 보내 드리리이다.

라는 말이다.



(13)내가 이제 재주 있고 총명한 사람을 보내오니 전에 내 아버지 후람에게 속하였던 자라

(14)이 사람은 단의 여자들 중 한 여인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라 능히 금, 은, 동, 철과 돌과 나무와 자색 청색 홍색 실과 가는 베로 일을 잘하며 또 모든 아로새기는 일에 익숙하고 모든 기묘한 양식에 능한 자이니 그에게 당신의 재주 있는 사람들과 당신의 아버지 내 주 다윗의 재주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하소서



이스라엘의 성전건축에 이방인 나라인 두로의 

적극적인 협찬을 받지만

어쩐지 내 생각엔 이방인 나라의 재료나 가술자가 없으면 

성전건축이 안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축이 그런 것 이었을까?

있는 것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있는 인원으로 기쁘고 즐겁게 할 수는 없었을까?



건축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 물어보고

건축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물어보고

건축을 마치기 전에도 물어보아야지 할 생각은

찾아볼 수 없는 듯 해서 말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사람이 거할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실 곳이니까!

하나님 거하시기에 괜찮은 곳이어야지

사람이 보기에 괜찮은 곳만 되어서는

안될 것 같아서...



나중을 아니까 하는 말이지만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축이었다면

지금 그 자리에 그 모양 그대로,

성전만은 번듯하게 남아있어야 하지 않을까?



색소폰을 분지 2년여가 되어간다.

목사님의 배려로 오늘 에배시간에 특송도 한다.

즐겁게 열심히 그리고 감정을 듬뿍 실어서

내 실력대로 부를 생각이다.



그런데 색소폰을 부르면서 든 불경스러운 내 생각은

복음성가보다 가요가 더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찬송가는 진부하고 CCM은 몇 곡 빼고는 가볍다.



가요가 더 돈이 되어서 그런 것일까?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겨서, 

그래서 하나님이 약해지신 것일까?



하나님이 약해지고 시들해 질 수 있는 세상이다.

하나님을 뒷방 늙은이로 취급하는 세상이다.

그것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취급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존경은 그가 머무실 성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말씀에 있다.

말씀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견을 듣지 않으면서

보이기 위해 나중에 돌 위에 돌도 안 남을 

성전을 건축하는 것과 똑 같은 것이다.



내 안에 들어오신 말씀으로 기둥 세우기,

들어온 말씀 못 빠져나가게 벽 세우고 지붕 씌우기,

말씀과 내 심장 한데 묶어 못 박아놓기는,

남은 후반기 20여년 동안 꼭 짓고 싶은

내가 머물, 내가 짓고 싶은 성전의 모습이다.

잘 되어야 할텐데...

(2018.10.28. 일요일)


카페 정보

회원:
3
새 글:
0
등록일:
2016.12.07

로그인

오늘:
0
어제:
8
전체:
69,123

신입 회원 소식

게시글 랭킹

댓글 랭킹

현재 접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