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될 말씀

2018.02.05 08:44

박상형 조회 수:37

아니될 말씀(고전14:26~40)


바울사도가 교회의 질서에 대해서 말한다.
그것도 여자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
그렇게 하는 것과 같이”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십시오. 여자에게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지 않습니다.
율법에서도 말한 대로 여자들은 복종하십시오”(34)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으십시오.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자기에게 부끄러운 일입니다”(35)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 나왔습니까?
또는 여러분에게만 내렸습니까?)”(36)


아마도 여자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이 발견한 자유를 남용한 탓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듯 하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 남자들에게 주었던
지도자의 역할에 대해 논쟁을 일삼았으며
또한 집에서 물어도 될 하찮은 질문을
공적예배에까지 가지고 왔고


복음이 그리스도에게서가 아니라 자기들에게서
유래했고, 자기들만이 복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는 듯이(36) 거만하게 말했던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바울은 이미 교회안에서 여자들이 기도하고
에언하는 것을 인정한 바 있기에
오늘 말씀은 교회안에서 여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니며 차별도 아니었음을
알게된다.


질서란 무엇일까?

혼란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사물의 순서나 차례
라고 국어사전은 정의한다.


그렇다면 교회의 질서 또한 순서로 볼 수 있다.
교회질서를 위한 순서가 있다?
무슨 순서일까?
몸을 위한 지체들의 움직임에 어떤 순서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몸의 유익을 위한 순서이다.
그리스도이신 머리의 명령을 받는 순서이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먼저 말하고 있던 사람도
계시가 내린 사람이 말할 때는 잠잠하라고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앉아 있는 다른 사람에게 계시가 내리거든,
먼저 말하던 사람은 잠잠하십시오”(30)


순서는 그리스도먼저 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덕을 위한 순서이지
앉은 자리의 순서가 아니다.


내가 교회를 다른 곳으로 옮긴 이유는
그 교회안에 순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 그리스도를 위한 순서는 없고
사람을 위한 순서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자매가 자신의 교회카톡방에 내가 섬기고 있는
성경공부모임을 소개했다.


두 사람의 반응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좋은 정보 고맙다는 것이었고
또 한 사람은 교회 밖 성경공부모임 참석치
말라는 경고의 말 이었다.


아마도 두 번째는 부목사님이나 전도사님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려면,
그렇게 단호히 말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그 소개된 모임이 어떤 모임인지 살펴보거나,
본인의 교회에서는 바른 복음을 제시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바른 복음을 제시하고 있는 교회는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섬기는 교회가 그런 경우이다.


눈물이 난다.
내가 20여년간 섬기고 있는 단체가 홀대 당해
아파서 우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우선이 아닌 교회가 우선인
현실이 슬퍼서,
머리가 우선이 아닌 몸이 우선인 우리네의
교회현실이 느껴져서 운다.


교회들이 질서를 잃어버리고 있다.
사람의 순서가 그리스도의 순서보다 앞에 서 있다면,
그리스도인 말씀보다 몸을 기쁘게 하는
프로그램만 가득하다면 그 교회는 희망이 없다.


말씀이 있는 교회를 찾아 가면 된다.
사람의 정에 이끌려서,
그동안 닦아놓은 인간관계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놓치는 것은 정말
아니될 말씀이다.
이것이 성도가 지켜야 할 진짜 질서가 아닐까?
(2018. 02.05.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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