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아쉬운 오늘

2018.02.03 08:19

박상형 조회 수:35

너무나 아쉬운 오늘(고전14:1~12)


방언의 은사 구해야 할까?
방언의 은사는 어떤 유익이 있을까?
바울 사도는 왜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대비시켜 놓은 것일까?


“사랑을 추구하십시오. 신령한 은사를 열심히
구하십시오. 특히 예언하기를 열망하십시오”(1)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는 성령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2)


“그러나 예언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인데,
덕을 세우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합니다”(3)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에게만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사람은 교회에 덕을 세웁니다”(4)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다.
은사는 개인유익을 위해 사용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 주어진다.


그러므로 개인의 유익을 위해 은사를 받았더라도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면
사용을 자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방언보다 예언(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의
은사가 더 중요한 이유이다.


주어진 은사가 공동체의 유익을 방해할 수 있다면
사용하는 것을 멈추고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은사를 사모하며 구해야 한다.


계속 개인유익을 위한 은사의 보유를 고집하고
또 구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신앙과 다를 바없다.
그것은 바울이 이미 버린 것이다.(13:11)


“나는 여러분 모두가 방언으로 말할 수 있기를
바라지마는, 그보다도 예언할 수 있기를 더 바랍니다.
누가 방언을 통역하여 교회에 덕을 세우게 해주지 못하면,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보다, 예언하는 사람이 더 훌륭합니다”(5)


“이와 같이 여러분도 방언을 사용하여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면, 그것이 무슨 말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결국 여러분은 허공에다 대고 말하는 셈이 될 것입니다”(9)


나 또한 방언을 받았다.
그 방언은 내 신앙을 의미있게 해주었고
또 하나님께 계속해서 기도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받은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방언기도를
거의 하지 않는다. 점점 기도의 내용이 모호해 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씀묵상을 시작한 이후로 내 기도의 내용이
명확해 졌기 때문이다.


가끔이지만 하나님과 단 둘이 있을 때에
또 계속해서 기도하고 싶어질 때가 있는데,
그 때, 한나가 엘리제사장에게 술취한 것으로
오해를 받았던 것처럼 아주 작게 방언기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방언대신 목숨거는 은사가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말씀이다.
말씀 묵상, 공부, 연구, 그리고 배운 것 가르치기이다.


15년 정도 해 왔는데 하나도 질리지 않고
오히려 더 새롭고 더 배워야 할 것이 보이고
더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30여년 정도는 해야 했다고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아~~
오늘 회사 비상근무로 인해
BBB 대표 부대표 리더 모임도 못 가고
목사님 부부와 일대일도 못해서 너무 아쉽다.
(2018. 02.03.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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