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 현상 앞에서

요즈음 나꼼수 현상 앞에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글을 씁니다. 그동안 나꼼수의 직설적인 표현들의 대상에 기독교가 놓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습니다. 사실 좀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것의 결과이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실 그동안 교회가 걸어왔던 불편했던 태도들 그리고 현실의 축복에 초점을 둔 가르침들, 상식에 벗어난 일부 교회와 목사들의 수준 낮은 행동들 그리고 지나친 부요함과 웅장함이 하나님의 축복의 전부라고 가르쳐 온 것의 부메랑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교회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십자군 전쟁처럼 수없는 전쟁을 용인하고 지지하는 행위를 하였습니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동안 불의와 폭력 앞에 교회는 무력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하물며 나꼼수 정도의 비난과 욕이야... 심각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마치 다윗 왕이 자신을 향해 욕을 퍼붓는 아비새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삼하16:10-11)

세상이 우리에게 그렇게 욕하는 것을 보면서 다윗처럼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옳은 태도입니다. 그것의 옳고 그름은 두 번째의 문제이고, 그것의 표현도 두 번째 문제입니다. 사실 그 욕이 뭐 대수겠습니까?

오히려 지금이 하나님 앞에 더 서야 하는 때입니다. 그 욕을 들으면서 우리가 하는 잘못들을 돌아보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축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합니다.
세상이 저렇게 욕을 해도
다윗의 마음이 없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사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회개합니다
당신의 자녀답게 살지 못했음을
당신의 이름을 더렵혔음을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회개합니다
뼛속 깊이 새겨진 것들을 긁어내며
인정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Lord Jesus Christ, have mercy on me)”

- 하정완 목사님 글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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