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우리의 기도가 막연히 무언가를 원하는 ‘바람’wish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기도의 신선함과 역동성은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린 채,

종종 우리는 이런저런 기도제목들을 적당한 비율로 혼합하여 진부한 표현으로 판에 박은 듯이 반복한다.

 

외적 행위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기도가 되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 내용이 없는 말을 외친다고 해서 기도가 되는 것도 아니다.

 

원하는 것에 온 마음을 쏟아 부으며

영혼을 불태우는 소원의 힘에 밀려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 기도이다.

 

불타는 소원이 기도 안에 충만할 때 비로소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다.

 

활활 타는 소원의 불은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것들을 전부 태워버린 후

은혜의 보좌에 이르러 응답을 받는다.

 

치열한 기도의 싸움에서 승리를 얻게 해주는 것은 결코 식지 않는 뜨거운 소원이다.

 

소원은 끊임없는 탄원의 무기를 기도의 손에 쥐여주고,

불굴의 용기와 무적의 능력의 옷을 기도에게 입혀준다.

 

수로보니게 여인(막 7:26)은 강렬하고 대담하고 끈질긴 불굴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 끈질긴 과부에게는 장애물을 극복하고 자기의 목적을 이룰 만큼 강렬한 소원이 있었다.

만일 그녀의 소원이 그토록 강하지 않았다면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기도라는 외적 행위에서 실패하는 경우보다

기도를 위한 내적 소원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는 외적 형태는 유지하지만, 우리의 내적 활력은 약해지다가 결국 죽어버린다.

 

하늘의 보화를 사모하는 주체하기 어려운 갈망이 우리 속에 있는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그리스도의 모든 충만함을 사모하는 소원이 약해져서

우리의 기도가 그토록 약해진 것은 아닌가?

 

안타깝게도 우리의 불은 너무 약하다.

기도의 가마솥이 전에는 펄펄 끓었지만, 이제는 약해져서 ‘점잖은 미지근함’으로 바뀌어버렸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상대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악한 것을 뽑아내는 작업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선한 것을 심는 작업도 해야 한다.

 

선한 것을 심는 작업에 기초와 열정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소원이다.

영혼 속에 있는 거룩하고 뜨거운 불은 하늘의 관심을 끌게 된다.

 

우리 주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라고 말씀하셨다.

영적 욕구 속으로 들어가 채워달라고 아우성치는

이런 소원이 우리에게 응답의 열매를 안겨주는 기도의 뿌리이다.

당신의 그 많은 기도제목들에 이런 뜨거운 소원이 담겨 있는가?

 

- E.M.바운즈, 기도하지 않으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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