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속해있는 교회 선교회부서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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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확신하노니 …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 38-39)

모든 사람은 때때로 거절의 고통을 겪는다. 부모에게 거절을 당할 수도 있고,

애인에게 거절을 당할 수도 있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거절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을 결코 거절하지 않을 유일한 분이 있는데,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다.

성경은 말한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8-39)

 

거절은 불안정한 감정을 남길 수 있다.

그리고 불안정함으로 인해 어리석은 짓을 저지를 수도 있다.

불안정하다고 느끼면서 자신감 있게 보이려고 애쓰면

굳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불안정하게 느낄 이유가 없다.

하나님은 당신에 대한 사랑을 결코 멈추지 않으신다.

그분은 당신을 절대 거절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에서는 가진 것들을 잃을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이 주신 구원은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이상 목적이 이끄는 삶을 위한 매일 묵상 904호 (국제 제자 훈련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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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생활을 왠만큼 해왔다면 머리로는 이런 말씀이 이해가 간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 부딪치면 어려운 때가 있다.

 

만약에 충격적인 거절의 경험을 과거에 했었고, 

그 경험이 치유되지 않은채 오래 되었다면,

일종의 습관처럼 거절에 대해 갈수록 민감해 질 수 있다.

이런 과정은 생각이나 사고과정 없이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과정이다.

 

본능적인 반응들은 우리의 본능을 관장하는 뇌의 편도체라는 부분을

통해 반사적으로 하는 반응이라고 한다 (동물들은 주로 이런 본능적 반응을 한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전두엽 (이마 부근)이라는 뇌 부위가 있고, 이 부분은

어린 시절부터 발달되어 가는 부분인데, 생각하고 기획하고 결정하는 의사결정과

도덕성과 통제능력 등의 자질을 관장한다고 한다.  

 

어린시절에는 인지기능이 잘 발달 되지 못한 상태라서

성숙한 판단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른들의 지도가 필요하다. 

어린시절부터 말씀을 잘 배워서 위의 묵상 말씀을 늘 들으며 또한  어른들이

잘 설명해 주고 그대로 사는 모습을 보면서 잘 자라는 경우엔, 

말씀대로 사는 것이 제 2의 성격처럼 좀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그처럼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지 못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신앙생활은 공부하는 것이다 라는

어떤 분의 말에 나는 공감한다.  알아야 믿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깊게 알고 체험한 만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되기 때문에. 

그래서 문설주에 미간에 붙이고 살라고 하지 않았던가. 

시편 1편에서는 말씀을 매일 묵상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편도체 회로를 통해 우리의 감정과 본능이 인도하는 대로만 산다면,

타인의 거절에 대하여 불안하고 화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거절에 대하여  화를 내거나 화를 내지 못할 상황이라면 우울해 지거나,

이도 저도 여의치 않다면 간과하고 덮어버리려고 할 것이다

자신의 감정은 마음속에 그래도 둔채. 

 

너무 화가 나서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사람에게 화내는 대신

먼저 주님 앞에서 화를 풀어내는 것이 필요 할 것이다.

그런 훈련 즉 바로 기도 할 수 있는 훈련이 되어 있지 못할때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다윗은 바로 주님께 풀어 놓을 수 있었던 사람이다. 시편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모든 억울함과 비탄과 쓴뿌리를 주님 앞에 고백한 그의 기도가 시편으로 기록되었듯이.  

공동체 안에서 화를 내면 안되기 때문에 기도를 통해 풀어내지도 못하고

사람에게도 풀지 못하면 우울하게 될 것이다.

불안해지고 우울해지는 것도 이제 피곤해져서  즉 이도 저도 다 싫어서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공동체에 참여하기

어렵고 자신도 공동체 전체도 손해를 보게 된다.  

 

기도를 통해  마음에 안정을 얻게 되면 그 때는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다. 

내가 왜 불안해진건가?  그사람이 왜 나를 거절한 것인지?

그 사람이 내가 인사하는데도 모른 척 한 것은 혹시 다른 생각하느라고

나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아니면 나를 잘 모르기 때문에 오해하고

피하고 싶어서 일 수도 있다. (주님 외에 세상에서 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 .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말씀을 통해 사람과 세상에 대하여

좀 더 확장된 시야를 갖게 된다면 치유과정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처럼 전두엽 회로를 활용하면서 말씀을 경험하고

성령의 도움을 구할 때 내 안에서 말씀이 역동적으로 역사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묵상 말씀이 매일 순간 순간의 상황에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추신: 그렇다고 편도체 회로 활용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사람은 우리의 본능과 감정을 잘 알아차리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사람일 것이다.

          다윗의 생애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예배자였다.

          아이처럼 꾸임없이. 반면  전두엽 회로를 자신의 본능과 탐욕을 위해 잘못 사용했던 바리새인

          인들의 삶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 뇌와 몸의 모든 부분이 주님의 통치

          아래 놓일 때 역동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게 되는 것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