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건국과 기독교>

성경말씀, 롬13:1~7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 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롬 13:1)

"공의는 나라를 흥하게 하고 죄는 모든 백성을 부끄럽게 하느니라"(잠 14:34)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돌려보내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로 돌려보낼지니라"(마 22:21)

 

이 말씀은 우리 기독신자에게 국가에 대한, 권세에 대한, 정치에 대한, 태도를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30여 년간 일본의 포악한 정치 밑에 종이 되었을 때에는 정치는 우리가 유일한 바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해방된 오늘날 나라를 다시 찾아 나라의 주인공이 된 우리로서는 누구나 다 정치에 관여하여 국가의 흥륭(興隆 흥하여 매우 번성함)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나라 백성이면서 동시에 이 나라 국민이 된 우리 기독교도들은 하늘나라와 이 나라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할 것이며, 우리 신도들은 이 나라에 대한 어떠한 책임이 있는가를 분명히 파악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정치철학>

본 문제에 관하여 기독교의 정치 철학을 간단히 소개하고, 다음에 실제적인 문제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지금 이 지구상에는 20여 억이라는 인류가 영유하고 있는데, 각각 국가를 형성하고 있고, 지금 UN에 가입된 국가만 해도 50여 국가나 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국가가 우리 인간 생활에 필요합니까, 필요하지 아니합니까?

 

근세의 계몽철학과 19세기에 자연과학의 영향을 받은 무정부주의자 프루동(Proudhon)과 크로포트킨(Kropotkin) 등은 국가의 필요성을 부인합니다. 그들은 현존사회의 모든 해악의 원인을 국가의 강제 권력에 있다고 하여, 이러한 강제 권력을 배제한다면 본래 인간은 선하기 때문에 본래의 선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강제가 악을 낳는다는 것을 강조하여 모든 인간성을 미화한 데 오산(誤算)이 있었습니다.

 

악은 먼저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만약 이 악이 없으면 무정부주의의 실현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성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산상보훈대로 누구나 다 할 수 있다면 정부는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든지 우리의 이상이요, 현실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정부는 성경 말씀대로 "악을 행하는 자를 벌하기 위하여" 세운 것입니다. 즉 죄가 있기 때문에 관원을 임명하여 인간 생활에 필요한 질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강제 권력, 곧 주권자의 소재는 무엇입니까? 이에 대하여 제왕은 신을 대신하여 모든 권력을 가진다는 중세기의 신성설이 있고, 국가적 자아의식 의지를 주장하는 독일 철학에 의한 범신론적(汎神論的) 국가 주권설이 있으며, 근세에 와서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는 인민 주권설이 생겨났습니다. 18세기에 인민 주권으로 공화국을 세운 나라에는 1776년에 독립한 미국과 1789년에 이루어진 불란서(프랑스) 공화국 두 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인민주권이지만 불란서는 무신론적 인민주권이었으므로 테러의 성행, 반(反)혁명운동의 봉기, 나폴레옹 제국의 건설, 왕국의 복구, 나폴레옹 3세의 제국재건 등으로 19세기 중 제일 고난이 많은 민족이었습니다. 그 간에 단두대에서 아침 이슬같이 사라진 청년의 수가 그 얼마입니까?

 

이 반면에 미국은 기독교적 민주주의에 의한 국가로 그 헌법에 "감사하리로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관헌을 택하는 권(權)을 주셨다."라고 하였고, 독립선언서에는 "아메리카 국민은 자연법과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여 그 권리를 주장하고 버릴 수 없는 권리를 창조주인 하나님으로 부여된 고로 일어나노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미국은 건국 이래 오늘까지 세계에 제일 축복을 받은 평화의 나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주권의 근본은 다 신에게 있다는 것의 증거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방법으로 권세를 얻었든지 다 하나님께 대하여 책임이 있습니다. 즉 "그 권세가 있는 자는 하나님의 일꾼 됨을"(롬 13:6) 기억하여야 합니다. 고대로 모든 정치가는 다윗 이래로 글래드스톤, 링컨까지 이런 의식을 가지고 정치를 하였습니다. 만약 이 책임을 잘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주권을 옮기시기도 하고 나라를 망하게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정치가는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벨사살 왕이 그 관원 1000명을 불러서 큰 잔치를 베풀고 술을 마시며 금, 은, 동, 철, 목석으로 만든 우상들을 찬양할 때, 돌연히 한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을 쓴 것을 당시의 참된 정치가 다니엘에게 물었을 때 다니엘은 담대히 서슴지 않고 왕 앞에서 "왕이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영광과 존귀를 왕의 조부 느부갓네살에게 주셨으니 그 주신 권세를 인하여 모든 백성과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들이 그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는지라 저가 임의로 죽이고 살리며 임의로 높이고 낮추더니 저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강팍하여 교만을 행하나니 왕위를 폐하고 그 영광을 빼앗기고 인생 중에서 쫓겨나 그 마음이 변하여 야수(野獸)의 마음과 같아지고 또한 들나귀와 동거하고 또 소와 같이 풀을 먹고 그 몸은 이슬에 젖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의 나라를 주관하시고 또한 그 뜻 대로 나라를 사람에게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게 하셨으니 벨사살 왕이여 왕은 그의 손자가 되어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겸비하지 아니하고 오직 스스로 높여 하늘의 대주재를 거역하고, 우리가 그 성전 기명을 왕 앞에 가져다가 왕과 관원들과 왕후와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또한 금, 은, 동, 철과 목석으로 만든 우상 곧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자를 찬양하고 드디어 생명과 호흡을 주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이에 하나님이 손가락을 보내사 이 글을 기록하게 하셨으니 그 글은 이것이니 메네 메네 데 겔 우바르신이라 하였으니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헤어서 마치게 함이요 데겔은 하나님이 왕을 달아보니 부족하다고 하심이요 베레스는 하나님이 왕의 나라를 나누어 메데와 바사 사람에게 주었다 하심"이라고 사실대로 조금도 숨김없이 말하였고, 또 사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이는 다니엘의 정치 철학인 동시에 우리 성경이 국가 주권에 대하여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 오늘날 패망 당한 일본을 보시오. 주권의 근본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자의 말로가 아닙니까?

 

대저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자연계에 자연 법칙을 주셨으며, 도덕계에는 도덕적 법칙을 주셨듯이 정치에도 일관한 원리를 주셔서 그 원리에 의하여 정부를 세워 모든 백성이 복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공의는 나라를 흥하게 하고"라는 말씀과 같이 공의를 정치의 원리로 주신 것입니다. 국가 내에도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가 있고, 계급과 계급과의 관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과의 관계가 있는데, 이러한 중에 우리 인간의 인격을 성장시킴에 절대 필요한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꼭 공의로 정치를 실행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정치를 실행하는 사람에게 칼 곧 권세를 주신 것은 악한 사람을 징계하라고 형벌의 칼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칼을 이러한 데는 쓰지 않고 오히려 선한 사람을 핍박하고 선지자를 죽이고, 주기철(朱基徹) 목사 같은 이를 옥사케 하면 이는 법대로 쓰는 공의가 아닙니다. 의인이 피를 흘리고 옥중에서 죽게 하는 이러한 정치가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이 칼은 시비를 온전히 분간하여 민사 소송 등에 있어서 공의로 판단하여 지도하라고 주셨거늘, 공평이 없고 안면과 지위와 뇌물로 허가를 주고 안 주며, 매관 매직을 하면 어찌 이를 공의라 하겠습니까? 또한 이 칼은 외적의 침입 시에 방비하라고 주셨는데, 육해군과 공군을 가지지 아니한 약 소국가를 침략하고 모략하고 자기의 야심과 야망을 채우기 위하여 약소한 민족을 유린하면 어찌 이것이 공의이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관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마땅히 스스로 씻어 깨끗게 하여 목전에서 악한 일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여 학대받는 자를 도와 주고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 1:16~17)고 하셨고, 또 말씀하시기 를 "너희가 공의는 물 흐르는 것 같이 하고 의는 큰 강물같이 할지니라"(암 5:24)고 하셨고, 또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여호와께서 네게 청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공의를 행하여 긍휼히 여기기를 좋아하고 겸손으로 네 하나님께 행함이 아니냐"(미 6: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국가와 교회의 관계>

이상 국가의 필요성과 주권의 소재와 정치 원리에 대하여 대략 말씀드렸는데, 이제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말하려 합니다. 역사적으로 교회와 국가는 3종의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중세기를 보면 교회가 정치를 하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국가가 교회에 예속되었던 것입니다. 11세기에 독일 황제 하인리히가 알프스산을 넘어 법왕(교황)이 유하는 카놋사 성외에서 맨발로 눈 위에서 3일간 빌어서야 비로소 사죄를 받았다는 사실은 국가가 교회의 구속 아래 있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종교개혁 이후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둘째로는 콘스탄틴 이후의 국가와 교회의 관계인데, 이 때에는 국교가 설립되어 현재까지도 독일(전쟁 전), 스웨덴, 노르웨이 제국은 국교를 가지고 있고, 영국도 성공회라 하여 국교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국교 관계에 대하여는 좋은 점도 물론 있으나 세속의 권세가 교회를 간섭하는 정치 모략이 있기 쉬운 원만치 못한 점도 있었습니다.

 

셋째로는 교회와 국가를 완전히 분리하는 미국과 화란(네덜란드) 같은 칼빈주의 제국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로"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 완전한 분리주의는 그리스도의 교훈에도 적합하므로 교회는 영적 범위 안에서 완전 자유할 것이며 간접적으로 국가의 정신적 기초가 될 것입니다.

 

 

<개인 신자와 국가의 관계>

마지막으로 개인 신자와 국가의 관계는 어떠하여야 하겠습니까? 이상 말한 바와 같이 국가와 교회는 완전히 분리해야만 되겠지만, 개인은 신자인 동시에 또한 국민인고로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 나갈 때 신자는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첫째로 우리는 주권이 하나님께 있는 줄 알아 영광을 돌리는 경건한 명령에 순복하는 나라를 만들 의무가 있으며, 둘째로는 공의에 기초하여 기독교의 국가적 이상인 자유 평등 박애가 실행되는 국가를 만들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과 소금의 직책을 감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18세기에 북미 대륙의 청교도들은 독립전쟁을 하여 아메리카 독립을 완성했고, 17세기 화란인은 서반아(스페인)와 용감히 싸워 독립을 획득했습니다.

 

<국가에 대한 우리의 의무>

그러면 특히 이 시대에 처한 우리들은 국가에 대하여 어떤 의무가 있습니까? 우리 대한은 아직까지 완전한 독립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이 기회에 독립을 완수할 책임이 있습니다. 정치적 자유가 없이 신앙의 자유와 기타 모든 것은 없는 것입니다. 고로 우선 독립입니다. 이것은 우리 겨레의 지상명령입니다. 그러나 독립은 하되 기독교 이상에 의하여 건국케 할 의무가 있습니다. 건국하되 유물론적 독재국이 되면 어찌합니까? 이 때는 참으로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우리의 행동여하가 자손만대에 큰 관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자각하여 우리의 의무를 수행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신자가 어떻게 이 천부의 사명을 다할 수 있겠습니까? 최선의 의무 이행의 방법은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조선의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참으로 지금은 각 방면이 혼돈한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 근본 이유는 사상이 혼돈해진 까닭입니다. 유신론이냐 무신론이냐? 민주주의냐 독재주의냐? 기독교 사회주의냐 공산주의냐? 건설이냐 파괴냐? 문명이냐 야만이냐? 이러한 사상적 기로에서 청년과 학생과 노동자, 농민, 소시민, 일반 대중들은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어느 노선이 우리가 취할 진실한 노선인가를 알고자 대중은 갈망하고 있습니다.

 

신자의 사명은 여기에 있습니다. 천고에 빛나는 진리를 파악한 우리가 철저한 사상교화 운동에 나서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합니다. 강연회나 토론회를 개최하고, 잡지나 소책자를 발간하는 등 기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국으로 이 운동을 추진시켜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독교인은 잠잠합니다. 최선의 정치 이념이 우리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리 퇴영적(退靈的 뒤로 물러나서 가만히 틀어박히려는 성질이 있는)입니까? 좀더 주도성을 가집시다. 십자가를 가지고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을 합시다. 전후(戰後)에 각국의 기독교 민주당이 일어나 주도성을 가지고 활발히 움직이는 것을 보시오! 일어나 일합시다!

 

어떤 친구가 전에 내게 "대한의 기독신자로서 정치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하게 되면 으레 술과 담배를 먹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대한에는 묵공(默公) 윌리엄과 워싱턴과 같은 기독교 애국자가 없습니까? 참 신앙을 가지고 정치운동, 사회운동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일반 교우들은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전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전도는 최대의 정치운동이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기독교적 이상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이 전도운동을 개시하여 전 대한 민족의 사상을 기독교 사상으로 순화(馴化)한다면 공의의 나라, 기독교 독립 대한이 속히 이루어 질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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