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무시(마15:21~28)


1미터의 폭설이 오던 2월 어느 날

출근길에 무언가에 쫒기던 고라니가

차를 피해 옆 길로 가다가 그만

눈 속에 갇혀 버렸습니다.


작은 개 두 마리가 그 뒤를 쫒아왔고

고라니가 그 개에게 물어 뜯기려는 순간에

내가 소리 지르며 고라니에게 다가가자

개들이 쓰윽 쳐다보더니

“가던 길이나 가슈” 라고 말하며(?)

도망가지도 않고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겨우 개들은 쫒아냈지만

그날 나는 개 무시 당했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가나안 여자를 개 무시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으신 공평하신 분이

사람을 개 취급하시다니요?

그것도 여자에게 말입니다.


여자를 시험하려고 그런 것 압니다.

그러나 여자가 맞대응하지 않고

개로 취급받아도 좋다면서 겸손하게 나왔으면

사과정도는 하셔야 되는 것 아닙니까?


사과가 아닌 네 소원대로 되리라뇨?

미안해 내 말이 심했지? 라고 말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건가요?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하신 말이 맞습니다.


예수님은 사과를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사과를 하신다면

자신이 한 말이 잘못 되었다는 것인데

진리이신 분이 말을 잘못 할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엔 조금 심해보이지만

사과를 하시지 않고 선포를 하신 것입니다.


진리는 미안해하지 않습니다.

미안해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진리에게 사과를 받으려 하지 맙시다.


진리에게 따지다보면

진리가 주는 소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소원을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리를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진리가 뭐라 하든 받아들이는 것이

진리를 감동케 하는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진리가 나에게 뭐라 하든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개에게 무시를 당했지만

나는 고라니를 구해주었고

가나안 여자도 개 무시를 당했지만

그의 소원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살고 죽는 문제 앞에

무시 좀 당하는 것이 무슨 대수겠습니까?


무시의 강도가 센 만큼

소원을 이룰 수 있는 확률도 큽니다.

맞대응하지 않고 자신을 인정만 한다면...

(2011.08.09.09:27  박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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