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십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날 사랑하셔서 날 대신하여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지?

도무지 그 깊이를 다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저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산악인 박정헌씨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후배와 함께 히말라야의 촐라체봉에 올라 기쁨을 맛본후 자신과 후배의 허리를 자일 하나로 묶고

내려오는데 그만 후배가 발을 헛디뎌 큰 얼음 빙벽 사이에 난 골짜기에 빠졌습니다.

산을 오르느라 힘이 다 소진된 데다가 두 사람을 연결하던 자일이 가슴을 후려쳐 갈비뼈 두 개가 부러진

상황입니다.

공중에 매달린 후배를 보며 죽을 힘을 쓰던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자신이 죽을지언정 후배를 살리기 위해 어떻게든 버틸 것인가?

아니면 자일을 끊고 혼자라도 살아 돌아갈 것인가?

 

박정헌씨는 피도 섞이지 않은 후배를 살리기 위해 몇 시간의 사투를 벌였고 결국 죽음의 골짜기에서

그를 끌어냈습니다.

박정헌씨는 추락중에 두 다리가 부러진 후배를 업고, 안고, 부축하여 빙벽을 타고 암벽을 넘어 살아

돌아왔습니다.

후송된 후에 못쓰게 된 손가락 여덟개와 발가락을 잘랐습니다.

30대 후반의 남자가  손가락 여덟개를 잘랐다니 산악인으로서의 생명이 끝났음은 물론,

어떤 일도 제대로 하기 힘든 상황이 되고 만 것입니다.

 

`꼭 그래야 했을까? 안되면 끊어버리고 혼자 살아서 내려오지 ' 하는 생각이 일반적이지

`아, 그 희생은 숭고하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야 된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이나 될까요?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이 나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 , 신앙생활의 본질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갈2:19

 

아무리 부채가 많아도 죽고 나면 갚을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빚쟁이에게 쫓길 일도, 교도소에 갈 일도 없게 되지요.

그런데

죽어야 할 자리에 예수님이 대신 가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율법에 대해 이미 죽은 자입니다.

죽음은 율법에 대한 자유를 의미합니다.

다시는 율법이 나를 정죄하거나 저주할 수 없습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2:20

 

무슨 말씀입니까?

신앙생활이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을 가리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모든 이야기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사 십자가에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셨다는 사실만큼

내게 충격을 주고 내 가슴을 뜨겁게 하고, 내 생각을 완전히 뒤집는 사건이 또 어디 있습니까?

 

탁월한 성경 교사이자 저술가인 에릭 사우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부활보다 더 중요하다.

십자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알리는 것이라면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복을 알리는 것이다.

승리없는 정복은 없다."

 

십자가, 거룩한 삶으로 이끄는 힘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일은 이미 주님이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서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는 아직 하나님이 하실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속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입니다.

이것은 매일의 순종과 참회를 통해 조금씩 발전해 가는 과정입니다.

믿는 자도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빨리 회개하고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도록

돌이키는 것입니다.

 

십자가, 희생하게 하는 힘

 

<나를 따르라>의 저자 본회퍼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그분의 제자로 부르신 것은 죽으라고 부르신 것이다."

이 말은 진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의 모습을 가장 닮은 순간은 희생하는 모습을 보일 때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 한분이 자신과 아내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아내가 큰 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교회의 순장이라는 분이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아내를 찾아와 병문안을 했답니다.

한 번 방문할 때마다 두 시간 이상씩 머물며 위로하고 기도해 주고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아내는 물론

남편도 놀랐다고 합니다.

그러다 아내가 퇴원하고 나서도 거동이 불편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자

또 어느 교회의 호스피스 집사님이 2년동안 매주 한 번씩 방문해서 아내를 위해 기도하고 빨래와 청소를

해주고 장도 봐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온갖 희생을 다하는 모습에 부부가 큰 감동을 받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 가운데 예수님의

형상이 심어져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희생없는 곳에 무엇이 가능합니까?

이것이 작은 예수의 삶입니다.

 

십자가, 세상을 이길 힘

 

세상살이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하루 하루 사는 것이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성공하면 할 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지며...

나름대로 안정된 생활을 누리는 사람들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바로 허무함입니다.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않고, 입은 먹어도 다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도 세상살이가 힘들고 고달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점저 자신감은 사라지고, 남들처럼 앞서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럽고, 도와줄 만한 손길이나

기댈만한 어깨도 없고,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고, 결국은 우울증에 빠지는 비참한 상황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을 살 수 있게 하는 힘, 벌떡 일어나게 하는 힘, 절대 기죽지 않게 하는 힘,

비틀거릴 때 붙들어 주는 강한 손,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며 감사할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내 안에 없는 힘, 밖으로부터 오는 힘이 필요합니다.

 

어디서 이 힘을 얻을 수 있을까요?

십가가 앞에 나아가 날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붙들 때 힘이 생깁니다.

 

"내가 네게 준 하늘의 영광, 하늘의 복은 세상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넉넉히 이겨낼 힘이 된단다."

십자가 앞에서 이런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힘이 안 생길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이렇게 힘들고 슬프지만 내일은 기쁨의 춤을 추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계셔서 나를 사랑하시고 보살피신다 !

 

십자가 사랑에 울다

 

예전에 마음에 알 수 없는 갈증이 나고 영적으로 답답해져서 고전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면 누구나 다 그런 심정을 겪게 되지 않습니까?

 

안이숙 사모님.

어떻게 그렇게 변함없이 신앙생활을 유지하셨을까.

 

하루에 10분만이라도 십자가의 주님을 묵상하십시오.

아무리 바빠도 10분만 ,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주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분의 십자가 밑에서 흘러내리는 피에 두 손을 담그고 그분을 우러러 보십시오.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한 번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입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힘이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입니다.

 

신앙의 중심은 십자가 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마음 중심에 십자가가 있는 사람은

거룩하게 살아갈 힘, 희생하며 살아갈 힘, 세상을 이길 힘을 얻게 됩니다.

십자가,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복된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 옥한흠 < 이보다 좋은 복이 없다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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