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사랑은 One-side Love (짝사랑).

 

전도를 나갔다.

믿지 않는 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는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갔다.

냉정한 거절을 당했다.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는 나의 사랑(?)과 열정(?)에 전혀 무관심했다.

 

그 무관심에 , 그 냉정함에 , 그 거절에

내 마음이 상처를 받았다면

나는 그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 진정 사랑의 마음을 가진 것이다.

다만, 짝사랑이었을 뿐.

그는 전혀 반응도, 미동도, 관심도 없는 짝사랑일뿐 이었다.

 

내 마음이 상처를 받지 않았다면

나역시, 그 죽어가는 영혼에 지나치는 제사장이었을 뿐이다.

헐벗은 아이에게 얼른 집에 가서 밥먹으라고 충고하는 방관자.

 

그가 전혀 반응도, 미동도 관심도 없고 냉정했음에도

나역시 냉정했다. 

내 속마음에는

"안 믿으면 니 손해지. 내 손해냐." 하는 반감(?)이 존재하였다.

 

생각을 바꿔보자.

One-side Love(짝사랑)에서

Two-side Love(두사랑)로

 

내게 아니 하나님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을 찾는 거다.

 

2000년전 예수님이 당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대해

 

"그래서 어쩌라구? "

하는 표정으로 관심없는 사람을 찾아가 관심이라도 보여달라고

애걸 복걸(?)하는 것 보다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감하고 예수님을 믿어보자는

내 제안에 선뜻 따라 나서는 사람을 찾아 나서는 거다.

(~과연 그런 사람이 있을까? )

 

이것이 정녕 전도여행 아닐까?

 

양육도 마찬가지다.

focus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관계 속에 싹튼 情이거나

유쾌한 한끼 식사가 되어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유쾌한 회식은 크리스천 모임이 아니어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단지, 구속이 없을 뿐이다.

필요하면 시간나면 모임에 참석하고

그렇지 않으면 가벼운 핑계로 거절 할 수 있는 세상모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임에는 다소 거룩한 부담과 책임이

마음 속에 있어야 한다.

 

물론, 세상적인 보답은 없다.

오로지 하늘의 상급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도 가봐야 아는 것이지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마태복음 28:19~20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