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는 기독교와는 다릅니다... 천주교는 처음부터 기독교가 아님

1960년대 초 로마 카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회를 열어 종교 통합을 위한 발판을 구축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테레사 수녀의 발언으로 잘 요약될 수 있습니다.

산의 정상에 오르는 길이 여럿이듯 구원의 길 역시 여럿이다.

이 같은 사상은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남의 종교를 존중해 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몇 년 전부터는 사월초파일에 천주교회가 종을 치고 석가 탄생을 축하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성탄절에는 불교도들이 성탄 찬송을 불러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일간지들도 천주교의 추기경이나 불교의 주지는 참으로 아량이 많은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추세에 부응하기 위해 이제는 소위 프로테스탄트 신학교 교수라는 사람이 우리 기독교인들도 석가탄신일을 축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독자께서 우리와 우리 자녀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염려하신다면 부디 매주 일요일 일간지의 종교란을 유심히 살펴보기 바랍니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종교 통합 혹은 종교다원주의를 부르짖고 있지 않습니까?

이 땅에 있는 산의 정상에 오르는 길은 여럿 있을 수 있으나 이 땅에 속하지 않은 하늘나라에 가는 길은 단 하나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결코 자신이 구원에 이르는 여러 가지 길 중에 하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이같이 진리를 저버리고 ‘사랑, 일치, 평화, 통합’ 등을 부르짖는 종교 지도자들은 양의 옷을 입고 늑대에게 양을 넘겨주는 사악한 자들입니다.

역자는 지난 1982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에서 공부를 하며 교수 생활을 했습니다.

1985년은 우리 가족의 삶을 크게 바꿔 놓은 해였습니다.

감리교 장로의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종교적 열심을 갖고 교회 일을 했지만 참으로 진리가 가져다주는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영접하여 구원은 받았지만 종교에 매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에 벨기에에서 사역하시는 구영재 선교사님 - 지금은 캐나다에서 사역하심 - 께서 우리 교회에 오셔서 ‘종교와 복음’ 의 차이점에 대해 밝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때까지 참된 기쁨을 누리지 못한 것은 ‘종교와 복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매우 열심히 종교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분께서는 ‘종교와 복음’에 관해서 ‘천주교와 기독교’의 예를 들면서 설명하셨는데 그 순간 참으로 저는 큰 빛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스스로 천주교의 유래와 본질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기원이 고대 바빌론 신비 종교에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천주교와 기독교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세계사와 기독교회사가 권력을 가진 자들의 편에 유리하도록 미화되고 변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경우를 보면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이때에 정부와 타협을 한 자들만이 공공연하게 예배 처소를 짓고 밖으로 나와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지하 교회에 머무르거나 순교를 당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100년 혹은 200년이 지난 다음 북한의 교회사를 저술하는 사람은 자연히 배도한 사람들의 자료만을 갖게 될 것이며 배도한 교회의 교회사를 공인할 것입니다. 그

러나 이런 자료에 근거한 교회사는 참된 교회사가 될 수 없으며 오직 참된 교회사는 하늘의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사도 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700년 동안 천주교는 이 세상과 짝하며 세계의 정치 및 종교를 주도하려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사 시간에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은 결코 기독교인들이 일으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팔레스타인 지방의 예루살렘을 차지하여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야망을 가진 천주교 교황이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기독교가 온 세상에 전파될 때부터 크리스천들은 순교하는 삶을 택할지언정 자기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이단으로 내몰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종교 다원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크리스천들은 “기독교는 천주교에서 나왔다.”는 주장에 대해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 역시 대부분의 교회사가들이 주장하는 바로서 천주교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천주교는 주후 313년에 생겼는데 그렇다면 그 전에는 기독교가 없었다는 말입니까?

∙사도 바울이 마리아를 숭배하고 교황을 따른 천주교인이었단 말입니까?

∙천주교는 구교이고 기독교는 신교라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까?

오직 한국에서만 이렇게 구분되고 있는데 결국 이 같은 구분은 천주교가 기독교의 모체라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개신교(改新敎)라는 용어입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며 예수교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개신교는 '개신'을 믿는 것인가요?

이제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 같은 속임수로부터 용기 있게 뛰쳐나와야 하며 스스로를 기독교인으로 부르든지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러야 합니다.

왜냐하면 천주교와 기독교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리교에서 장로교로 가면 교회를 바꾸었다고 하지만 천주교에서 감리교 또는 장로교로 오면 '개종'(改宗)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개종'은 말 그대로 '종교를 바꾸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기독교인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기독교의 요람이 결코 천주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백성으로 부르신 유대인들이 세운 유대교라는 사실입니다.

주후 33년에 시작된 기독교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좁은 길이었고 순교자들의 피로 얼룩진 길이었습니다.

로마의 황제들이 수없이 많은 성도들을 죽였지만 계속해서 기독교가 흥왕하는 것을 보고 콘스탄틴 대제는 기독교를 국가의 공인 종교로 인정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려 했습니다.

이런 목적 하에 밀라노 칙령이 발표되었고 이때 세상과 짝하고 정권과 결탁한 무리들이 이교도들의 우상 숭배 사상까지도 포용하며 천주교를 만들어 기독교에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따라서 천주교가 기독교에서 나간 것이지 결코 기독교가 천주교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 후에도 천주교는 복음대로 믿고 그대로 살고자 하는 많은 무리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종교 재판 등을 통해 수없이 죽였습니다.

유아 세례를 부인하고 예수님처럼 물에 잠기는 침례가 맞다고 주장한 침례교도들을 죽였으며 미사에서 사제가 주는 빵 조각이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며 진짜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크리스천들을 수없이 죽였습니다.

그러다 16세기 초반에 천주교 사제였던 루터가 복음을 깨닫고 다시 기독교로 돌아오는 일이 생겼습니다. 물론 루터 이전에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좁은 길을 걸어온 기독교인들이 있었습니다.

 바른 교회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를 원하는 독자는 「새 교회사」(규장문화사刊)와 「순례하는 교회」(전도출판사刊)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생각으로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이방 신들을 섬기던 아브라함을 불러 내사 유대인들의 조상이 되게 하셨으며, 유대교를 신봉하며 열심을 내어 크리스천들을 잡아죽이던 바울을 회심시켜 온 세계에 기독교를 전파하게 하셨고, 천주교 사제로 지내던 루터를 회심시켜 그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로마의 교황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게 하셨으니 이 어찌 사람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21세기에 들어선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거나 반대하는 이들이 모두 연합하여 ‘뉴에이지 시대’ 즉 ‘새 시대’의 도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내거는 슬로건은 '평화와 일치'입니다. 이런 슬로건 하에서 이들은 전 세계의 종교, 문화, 교육, 정치 등을 통합하여 인간들에 의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하고 있습니다.

신약과 구약성경은 분명히 적그리스도가 다스리게 될 뉴에이지 즉 새시대가 ‘평화’의 이름으로 도래할 것과 그 때의 징조로 기독교회에서 배교하는 일이 있을 것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가 또 자기의 정책을 통하여 자기 손에서 속임수가 형통하게 하고 마음 속에서 자기 자신을 높이며 평화를 빌미로 많은 사람을 멸할 것이요, 또 일어서서 통치자들의 통치자를 대적할 것이나 그가 손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무너지리라.(단8:25)

또 사람들이 평화와 안전을 말할 그때에 아이 밴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임하는 것같이 갑작스런 파멸이 그들 위에 임하기 때문이니 그들이 피하지 못하리라(살전5:3)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지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는 먼저 배교하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할 것임이라(살후2:3)

온 세상이 진리를 내버리고 ‘평화와 안전’을 이야기하는 이때야말로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토록 고대하던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1994년에 미국의 타임지는 「카톨릭 교회의 교리 문답서」(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를 베스트 셀러의 하나로 선정했습니다. 이 책은 교황 바오로 2세가 공인한 책으로 현재 로마 카톨릭 교회가 믿는 바를 있는 그대로 모두 보여 주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에서 「가톨릭 교회 교리서」라는 제목으로 3권으로 나누어 출판했습니다(색인 등을 제외하고 총 981쪽이며 성바오로 서점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음).

이 교리 문답서가 나오자 미국의 존스(Rick Jones)는 「로마 카톨릭 주의를 이해하자」(Understanding Roman Catholicism)라는 책을 저술하여 천주교 교리 문답서와 성경이 기본적인 교리에서부터 상호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미국 Chick 출판사, 1995년).

역자들은 한국의 많은 기독교인들과 신학자들이 천주교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는 현 상황을 심히 안타깝게 생각하던 중 금번에 존스의 책을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성경을 모르고 교회가 하라는 대로 하면 구원받을 줄 알고 교회에 충성하는 천주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천주교 교리 문답서가 서로 얼마나 모순되는가를 보여 주어 성경이 말하는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부록으로 실은 글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천주교와 관련된 소책자 및 팜플렛 등을 번역한 것입니다. 글마다 그 출처를 밝혀 놓았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본서를 대하는 독자들께서는 역자들을 천주교에 대한 편견과 무조건적인 증오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라고 비난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께 역자들은 다음과 같이 묻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을 간구하며 상아로 만든 우상 앞에 절하는 것을 보고 사람이 만든 우상은 대답을 줄 수가 없다고 말한다면…

과연 이것이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입니까?

겨우 열여섯 살 난 소녀가 고해 성사 창구에 가서 결혼도 하지 않은 남자에게 자기의 생각과 감정과 유혹 받은 것 등을 말해야만 하는 것을 보고 이 모든 것을 주 예수님께 아뢰야만 한다고 말한다면…

과연 이것이 그녀를 미워하는 것입니까?

한 여인이 죽은 자기 남편이 연옥에서 더 이상 고통을 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를 위해 미사를 드리며 얼마 되지 않는 재산을 갖다 바치는 것을 보고 연옥이란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과연 이것이 그녀를 미워하는 것입니까?

십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금과 세마포로 치장한 교황을 신뢰하며 천국의 열쇠를 받고자 하는 것을 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사람을 신뢰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면…

과연 이것이 그들을 미워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온 인류에 대한 사랑을 보여 주시려고 이 세상에 보내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독사들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과연 이것이 그들을 미워한 것입니까?

사도 바울이 아테네에서 이방 신비 종교를 믿는 철학자들을 향해 당신들은 너무나 미신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을 때…

과연 이것이 그들을 미워한 것입니까?

역자들은 결코 천주교인을 미워하거나 실상을 잘 모른 채 종교 통합 운동 등에 빠져 들어간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단지 사람들을 파멸로 이끌고 가는 인본주의 종교 체제의 진상만을 보여 드리려 합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우리 기독교인들보다 훨씬 더 인격적으로 훌륭한 천주교인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대로 우리를 심판하시지 않고 우리의 죄를 제거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스스로 보내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각자 개인의 구원자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알게 모르게 종교 통합주의를 주도하며 사람들을 마귀의 제물로 만드는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악한 제도를 다시 세우려고 시도하는 자들을 향해 설교의 왕자요, 은혜의 복음을 전파했던 스펄전 목사는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주 앞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수6:26)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여리고 성을 건축한 자가 저주를 받았으니 우리 가운데 로마 카톨릭 교회를 재건하려고 애쓰는 자에게는 큰 저주가 있으리라.

우리 선조 시대에 로마 카톨릭 교회의 거대한 벽이 믿음의 힘으로, 노력의 인내로, 그리고 복음의 나팔로 무너졌다. 그런데 지금 그 옛 터전 위에 그처럼 저주받은 제도를 재건하려는 자들이 있다.

우리는 로마 교회의 죄악에 동조하는 자들에게 사려 깊게 그러나 담대하게 경고해야만 한다.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고 선조 때에 로마 교회가 저지른 죄악의 진상을 이야기해 주어야만 한다.

사제들이 올빼미처럼 햇빛을 싫어하므로 우리는 보다 철저하게 온 땅에 빛을 전파해야만 한다.

로마 교회에 독과 해가 되는 성경을 반포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건전한 복음 책자들을 해외에 보내고 있는가?

한때 루터는 “마귀는 거위 깃털 펜을 싫어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사실 그는 성령님의 축복으로 쓰여진 책들이 마귀의 왕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에 대해 확실하고도 충분한 체험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이리들이 교훈을 받지 못한 양무리들을 약탈하고 있으니 올바른 가르침만이 우리들 속에 들어와 종횡무진하고 있는 이단들로부터 양떼들을 보호하는 최선의 길이다.

본서에서 사용한 성경은「권위역본」(Authorized Version)으로 알려진「킹제임스 흠정역 성경」(도서출판 ‘그리스도 예수안에’, 2001년 8월 출간)임을 밝힙니다. 이 성경을 택한 이유는 초대 교회부터 좁은 길을 걸어간 성도들이 사도 바울의 안디옥 교회가 전해 준 ‘다수 사본’만을 성경으로 인정하며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틴데일, 루터, 칼빈, 웨슬리, 무디, 스펄전 등 과거 믿음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킹제임스 성경」 혹은 ‘다수 사본’에서 번역한 성경만을 사용했으며 사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출간된 성경의 대다수가 「킹제임스 성경」입니다.

이 성경의 위력에 눌려 꼼짝 못하던 천주교는 드디어 성경 자체를 변개시키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로 나온 역본들이 NIV, NASB, Living Bible 등이며 이러한 현대 역본들은 다 ‘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등의 카톨릭 ‘소수 사본’에 근거를 둔 카톨릭 성경입니다.

종교 개혁자들이 전해 준 성경을 버리고 카톨릭 성경인 현대 역본들을 취하게 되면서부터 카톨릭 교리가 틀렸다는 것을 찾아내기가 매우 어렵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 보다 상세히 알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역자 추천 참고 도서 목록에 있는 성경 관련 자료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2002년 8월에 이 책의 출간을 흔쾌히 다시 허락해 준 미국 칙 출판사의 존스 형제에게 특별히 감사를 드리고

(2002년 8월) 복음의 빛으로 눈을 돌리게 해주신 구영재 선교사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신 육신의 부모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께 모든 영광을 드립니다.

또한 도서출판 두루마리의 깊은 배려에 감사를 드리며 주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등불을 밝히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소수의 형제 자매들 위에 예수님의 평강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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