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얼굴보다 정직한 얼굴로”(전병욱 목사)

 

  교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있는 모습 그대로 정직하게 서야 한다.

예수님도 죄인과 병자를 부르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다.

이 말은 있는 그대로의 정직한 모습의 사람을 만나주시겠다는 의미이다.

예수 오래 믿은 사람일수록 굳어져 있다.

왜? 종교 교육을 오래 받다보니, 이미 정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는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설교 중에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런데 말씀대로 살지 못하니, 위장하고 가면을 쓰게 되는 것이다.

 

 
  하루 아침에 변화되는 사람은 없다. 신앙성장에는 과정이 필요하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기다림이 없는 성장과 변화는 없다.

먼저 가면 벗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야한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비행기를 타면 승무원들은 항상 웃는 얼굴이다.

 “안녕하십니까, 필요한 것 없으십니까”라고 하면서 미소 짓는다.

그들은 항상 기쁠까를 생각해 보았다. 아닐 것이다.

한번은 어떤 승무원이 내가 목사인줄 알고 상담을 요청했다.

뒤쪽에서 1시간 넘게 통곡하며 고백하는 아픔을 듣고 기도해 주었다.

웃는 얼굴보다 정직한 얼굴이 더 좋았다.

그게 인간이다. 바리새인은 항상 바른 얼굴이다.

가짜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라.

정직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윗은 원수에게 무척 화가 나 있는 것 같다.

거의 저주에 가까운 기도를 한다.

“원수가 빨리 죽게 해주시고, 그의 자녀들은 고아가 되고, 아내는 과부가 되기를 원한다.

자녀들은 빌어먹는 거지가 되게 해달라”(시109:8-10)고 기도한다.

이게 어떻게 성도의 기도겠는가? 성경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윗은 가면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정직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섰다는 말이다.

그래서 치유가 가능했고, 나중에는 원수도 사랑하는 모습으로 변화된 것이다.

성장에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청년 중에 한 사람이 질문했다.

“담배 피우면 지옥가나요?”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천국에 좀더 일찍 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고민하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

자기 힘으로는 안된다, 찬양의 능력을 의지해라.

기도했더니 되더라.’ 등 많은 조언이 있었다.

물론 구원은 십자가를 믿음에 달려 있다.

구원이 어찌 흡연에 달려 있겠는가?

나는 이런 연약함을 토로해도 용납되는 분위기가 좋다.

가면 벗어도 돌 던지지 않는 분위기가 바로 성장의 토양이다.

가면 벗고 하나님께 나가라.

교회는 용납해 주어야 한다.

기다려 주어야 한다.

그것이 사랑하는 것이다.

정직한 모습과 용납의 토양을 만나면

그 사람 안에서 생명이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생명은 반드시 변화되고 성장하게 되어 있다.

 

 

임마누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