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심리학자의 통계에 의하면, 보통 사람의 생활에는 ‘말을 듣는 일’이 45퍼센트, ‘말을 하는 일’이 30퍼센트, ‘읽는 일’이 16퍼센트, ‘쓰는 일’이 18퍼센트라고 합니다. 통계 수치가 말해 주듯이 가급적 말을 듣는 쪽에 서서 먼저 생각하고, 그런 다음에 말을 신중히 해야 합니다. 생각과 말과 일은 서로 연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이 없는 말이 있을 수 없고, 말없이 어떤 일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일은 시시각각으로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생각은 나름대로 갖가지 말을 만들어냅니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말을 보면 정말 아찔할 때가 있습니다. 입말 중에 여과되지 않은 상스런 어른들의 말투가 툭툭 불거집니다. 스펜서는 어린이야말로 부모의 행위를 비치는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분명 어린이는 어른의 씨앗이자 거울입니다. 어린이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아이의 평생을 두고 또렷이 각인됩니다. 바쁘고, 힘들고, 귀찮다고 무심코 내뱉는 말 한 마디가 아이에게 심각한 폐해를 줍니다.


물오리가 날 때부터 헤엄을 치듯이 어린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착한 일을 하고, 좋은 말을 할 수 있는 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성급하게 아이를 가르치려 드는 부모가 많습니다. 어린이들이 하는 일을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물오리가 헤엄을 치는 것을 못하게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단지 결과만을 바라는 조급함으로 내몰아세우는 것은 교육이 아닙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교육을 고집하면 부모 말씨가 고울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지 않은 교육은 어린이가 천성으로 지닌 모든 정서를 도외시하게 됩니다. 어린이는 어른들로부터 가장 아름답게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를 안고 태어났습니다. 어린이는 생명을 비롯한 모든 것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이미 부여받았습니다.


말은 곧 자신의 속마음을 꺼내서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말은 일단 입을 떠나면 그때부터는 그 말을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어떤 말은 평생을 두고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기도 합니다. 말빚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명심보감에 군평(君平)이 말하기를, “입과 혀라는 것은 화와 근심의 근본이요, 몸을 망하게 하는 도끼와 같은 것이니 말을 삼가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말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말을 하고자 할 때는 먼저 이 말을 해도 괜찮을 것인가를 충분히 생각한 다음 신중히 해야 합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한 치라도 상처를 안겨줄 수 있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평소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말빚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저, 무턱대고 불쑥 내뱉는 말 한 마디로 아이들은 무척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겠지요. 아이들에게 한 해 동안 겪었던 일 중에서 즐거웠던 일과 나빴던 일을 각각 세 가지씩 밝혀보라고 일렀습니다. 그랬더니 함부로 하는 말로 속상한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다른 친구와 비교하서 핀잔을 하고, 자신을 무시하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속이 상했나 봅니다.


이유는 별스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컴퓨터 에만 매여 있는 것을 보다 못한 엄마아빠가 몇 마디 던졌는데, 그 말이 상처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그만 것도 친구들과 비교해서 꾸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른과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자신이 남과 비교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런 까닭에 스스로 차별받는다고 생각되면 반항적으로 말대꾸하게 된답니다. 부모의 입장에는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아이가 소유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라고 인정하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