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안방에는 오래된 벽시계가 하나 걸려있습니다.

원목으로 테가 둘러진 그 시계는 십여 년 전 인근 백화점에서

제법 상당한 가격을 주고 산 국산 수제품입니다.

몇 년에 한 번씩 건전지를 교체해 주기만 하면 되는

나름 상당히 좋아 보이는 제품입니다.

 

그런데 몇 일전 틀린 시각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발견한 저는

예전처럼 건전지를 사다가 교체를 하였습니다.

다음날 엉뚱한 숫자에 가있는 시침과 분침으로 인해

저희들은 모두 크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시계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저희들은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시간이 맞지 않던 벽시계는 밧데리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의 전자적 또는 기계적 문제가 생긴 것 같았습니다.

저희와 십여 년을 함께 했던 멋진 벽시계는

이제는 그곳에 걸려 있을 존재 목적을

한 순간에 상실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전에 어디선가 협찬(?)받았던 벽시계를

외형이 별로라며 버렸던 기억이 아쉬움으로 떠올랐습니다.

 

아무리 멋진 외형과 가격을 주고 산 시계라도

제대로 시계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값싼 Made in Cxxxx 제품에 비해서는 물론,

아무런 쓸모가 없음을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벽시계는 장식으로라도 걸어놓을 수 있는 성격의

가구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멋진 괘종시계, 우아한 앤틱 벽시계,

갖가지 장식을 한 멋진 종류의 시계들이

아파트 내 쓰레기장 근처에서 아깝게 버려져 있는 것을

가끔씩 보았던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제 역할을 바로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어디에 쓸 수 있을까?

비전을 상실하고, 사명을 잃은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은 어떤 용도로 사용하실 수 있을까?

 

멋진 외모나 탁월한 재능, 뛰어난 스펙을 갖춘

사람이라 할지라도

보내신 분의 본질적인 목적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영적 쓰레기더미 속에서나 발견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장난 벽시계는 여전히 그곳에 걸려있지만

저희 가족은 더 이상 그 시계를 쳐다보지 않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아깝지만 그 벽시계를 버려버리고

비싸지 않고 그다지 우아해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시간은 정확하게 알려주는 다른 벽시계를 하나 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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