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입학한 강산이의 첫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았다.

태어나서 줄곧 목동에서 살다보니 사교육의 열풍에서 비켜설 수 없었지만

남들처럼 어릴 적부터 고액 과외를 시킨다거나, 값비싼 교구를 사서 지능개발을 시켜주지는 못했다.

 

유치원 시절부터 목동지역의 유명하다는 몇 몇 학원에서 무슨 검사라는 것을 받고나서

0.2%내에 드는 우수한 아이라는 둥, 자기 학원에 강산이와 몇 명으로 소수정예반을 만들어 별도로 운영해 보겠다는 둥...

그다지 싫지 않은 이야기와 제의를 받을 때면 마음속에 은근한 기대감이 자라고 있었다.

기대한 대로 어릴 적 강산이는, 다른 친구들은 미리 입학예상문제를 풀어보고 들어간다는 ㅇㅇㅇㅇ영재원에도

테스트삼아 치른 시험에서 쉽게 통과하였을 뿐만 아니라

영어학원에서도 매주마다 수십 개씩의 상당한 수준의 단어를 완벽하게 암기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 주었었다.

 

그러나, 목동에서 공부하려면 미리 선행학습을 2~3년은 앞서서 해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어공부를 위해 조기 유학이나 최소한 1년이상의 어학연수를 다녀와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에도

세상적인 방법을 따르지 않겠다는 믿음으로

단 몇 주의 해외 어학연수도 보낸 적 없이, 최소한의 선행이나 사교육에만 의존하면서

나름대로 정상적인 교육방법을 고수하여 왔었다.

 

그런데...

충격적이었다!

평소 인내심이 다소 부족하고 틈만 나면 놀려고 하는 태도나 항상 비스듬한 공부 자세를 보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성적표를 받아온 것이다.

물론 점수로 보면 그다지 나쁜 성적은 아닌데, 목동이라서 그러는지 석차는 상상을 초월했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급기야 강산이에게 해서는 안 되는 독설을 쏟아내었다.

공부 안 할 때 부터 알아봤다, 이게 성적이냐, 이렇게 하려면 차라리 공부하지 말고 놀아라,

미리부터 체력이나 길러서 육체노동할 때를 대비나 하라,....

 

나보다 더욱 실망감이 컸던 덕순자매 조차도 오히려 내게

"당신, 이 정도 밖에 안되는 사람이었냐"고 할 정도였으니.

따끔하게 책망도 하고, 한 편으로는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격려도 하고 용기를 주어야 하겠지만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 앞에

마음에도 없는 분노의 말만 쏟아져 나왔다.

급기야 학원에 다녀와서 비록 잠시 동안이었지만 컴퓨터 게임을 한 것을 알고 나서는

학원도 다니지 말고 그냥 집에서 스스로 공부하라고 쏘아붙이고 집 밖으로 나와버렸다.

 

문득, 분노와 실망감이 컸던 이유를 떠올려보았다.

워낙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많고, 선행학습이나 영재원 교육, 각종 경시대회 수상경력 등등...

쟁쟁한 아이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던 터라 어느정도의 기대수준 하향조정은 했었지만,

나름대로 내 속에서 눌려져 있던 은근한 기대감은 성적표를 보는 순간 커다란 실망감으로 터져나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실망감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번 기회에 기대수준을 대폭 낮추는 것이 현실적으로 현명한 방법일까?

 

갑자기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습을 보시고 무슨 생각을 하시고 계실까?"

"구원받을 만한 선함이나 자격조건을 전혀 갖추지는 못했지만, 내 아들 병헌이가 이런 정도의 삶은 살거야!"라고

기대하고 계셨다가 형편없는 모습을 보시고 실망감에 처진 어깨 늘어뜨리고 계시지는 않을까?

"병헌아! 그렇게 살려면 차라리 나를 모른다고 하고 아무렇게 살아라!"

"그렇게 사역하려면, 사역하지 말고 그냥 평범한 그리스도인으로 적당히 살아라!"

 

그러나, 나의 형편없는 모습에도 결코 실망하시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대수준 낮추시지도 않으시며 ,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믿기에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강산아! 예상 밖의 성적에 너도 많이 놀라고 실망했을텐데,

결코 기죽거나 포기하지 말고 다시 한 번 열심히 해보렴!

네가 최선을 다 했다면 아빠도 결코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련다.

 

그리고,

 

아빠 하나님! 저도 아빠를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인내와 용납으로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 하나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께요.

그러나, 저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 저의 삶을 꼭 붙들어 주시고 인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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