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성이 소동하여(8/24 큐티)

2011.08.24 14:53

이병헌 조회 수:851

오늘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비록 적토마를 탄 장수의 모습은 아니지만

수많은 무리들이 앞뒤에서 자신들의 겉옷을 펴거나 나뭇가지를 길에 펼쳐

예수님 입성을 환호하고 있습니다.

그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만 하면

모든 억압과 폭정, 부패와 혼란이 끝장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 시켜줄

이스라엘의 정치적 메시야가 되어 주시기를 염원하는 백성들의 기대는

9절의 호산나(이제 구원하소서!)라는 군중들의 외침이 되어 울려 퍼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는 어울리지 않게 예수님은

시골에서부터 좇아온 몇몇의 제자들과 많은 무리들을 대동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그러자 온 성에 소동(10절)이 일어나 그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소동이 일어납니다.

한국 교회가 한때는 천 만 그리스도인이 모이는 부흥의 모델이었습니다.

지금도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나 부흥 강사의 집회에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모임에서 수련회에 참석하여 은혜 받거나 비전트립이라도 한 번 다녀오는 경우에는

마치 이 세상을 다 구원할 것 같은, 온 몸을 다 던질 것 같은

은혜의 도가니탕 속으로 빠져 들기도 합니다.

찬양집회나 기도회에서는 마치 이 나라의 죄를 다 짊어진 어린 양이요

기꺼이 온 몸을 불사를 순교자의 모습입니다.

 

열정과 헌신에 사로잡힌 많은 청년들이나

은혜를 통해 새롭게 결단하는 지체들을 폄하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과 함께 행진하는 무리들 속에 섞여있는

저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 분과 함께 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들처럼 저도 제가 바라는 대로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나 결정적인 고난의 순간에

예수님을 멀리할 지도 모릅니다.

 

돌이켜 보니 저는 이미 여러 차례 예수님께 등을 돌려왔습니다.

많은 은혜도 경험하고 엄청난 결단과 헌신을 맹세 했었지만

조금만 손해되는 일이나, 자존심에 상처나는 상황에서는

거의 예수님을 외면하곤 했습니다.

고난과 핍박은 가능하면 피하고, 편하고 아늑한 안락함은 최대한 취하면서

적당히 사역의 흐름 속에 발을 담그고 있었습니다.

 

이러다가 태도가 돌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군중들의 외침에

아무런 반대 목소리도 내지도 못하고 숨어서 뒤만 따르는

구경꾼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저에게 이렇게 물어보시는 것 같습니다.

 

무엇 때문에 BBB와 함께 여기까지 왔느냐?

사역을 사랑해서냐, 나를 사랑해서냐?

처음 마음이 변질되지 않았느냐?

내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겠느냐?

끝까지 가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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