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

2011.06.09 15:40

이병헌 조회 수:1048

전직 판검사가 변호사 개업을 하고 나서 처음 맡은 소송에서

법원이나 검찰이 유리한 판결이나 처분을 내려주는 관행을 전관예우라고 하더군요.

본래의 의미를 넘어서서 최근에는 고위공무원이나 지방자치단체, 산하기관 등에서도

형태는 다르지만 다양한 방식의 전관예우의 관행이 만연하고 있어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고 있습니다.

마땅히 부담해야할 의무나 책임을 면제시켜 주거나, 상대적으로 낮은 기준을 적용하는 이유가

그동안 그가 수고하고 봉사한 노고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지라도

공정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대다수의 일반인들에게는 부당하게 여겨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영적인 전관예우를 받을 만한 성경속의 인물들 중에 모세 만한 분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출33:11에서는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고,

민12:3에서는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낼 때 10가지 재앙을 시행하였으며, 홍해를 가르고

온갖 이적과 기적을 대행한 모세야말로 누가 뭐라 해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 최선봉으로 들어가기에

마땅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하나님께서는 므리바 물가에서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라고 말하며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다는 이유로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는 매정함(?)을 보이셨습니다.

만약, 이런 잣대를 제게 들이대신다면 저는 아마 가나안에 들어가기는 커녕 눈으로도 볼 수도 없겠지요.

 

반석의 물을 내는 주체가 자신인 것처럼 하나님 영광을 가로챘고,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으며,

명하기만 하기보다는 반석을 쳐야할 것 같은 자신의 불신앙의 모습을

모세 역시 하나님 앞에 범죄임을 부정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만,

52절의 "네가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는 말씀 앞에

모세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그토록 바랐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목전에 두고도 들어가지는 못하는 상황이라면,

실망감에 낙심되어 모든 의욕이 사라질 법도 한데

이후의 말씀을 보면 모세는 끝까지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생명이다! 불순종하면 멸망할 것이다! 순종만이 살 길이다! 회개하면 회복시키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

각 지파들에 대한 개별적인 축복들,

여호수아에 대한 격려와 권면의 당부...

그리고 나서도

눈이 흐리거나 기력이 쇠하지 않음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느보산에서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합니다.

 

일이 조금만 제 뜻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은근히 서운해 하고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도 보이는 결과가 없다고 낙심하며,

수고하고 고생한 보람의 열매는 당연히 내가 따먹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제 모습과 너무도 다릅니다.

 

몇 년 하지도 않은 사역의 경력과 순장의 직분이 무슨 기득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 정도는 이해해 주실 거라는 죄에 대한 무딘 마음과

전관예우라도 해 주시길 기대하는 건방진 태도를 버리고,

구원의 은혜, 순장으로서의 특권, 사역자로 살아오게 하신 것을 영광으로 여기며,

제게 주어진 역할에 충성하기 원합니다.

 

비록 모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받은 은혜만큼은 모세 못지 않은 귀한 신분이기에

영적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삶으로 보이면서 말입니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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