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멸망하리라!!(5/26큐티)

2011.05.26 14:15

이병헌 조회 수:1052

몇 일전 큐티 말씀인 신명기 28:15에서 하나님께서는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라고 말씀으로 시작해서 수 일 동안 엄청난 저주의 말씀을 지루하리 만큼 반복하고 계십니다.

 

16절부터 오늘의 본문인 44절까지의 저주의 내용은 다 말로 하기도 숨이 가쁠 정도로 끝이 없으며,

그 내용 또한 입에 담기조차 싫은 내용들입니다.

- 성읍에서도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

-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

-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제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

- 들어와도 나가도 저주를 받을 것

- 염병, 폐병, 열병, 상한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저주를 받을 것

- 하늘은 놋이 되고 땅은 철이 될 것

- 비 대신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실 것

- 대적 앞에서 패하게 될 것

- 네 시체가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짐승들의 밥이 될 것

- 애굽의 종기와 치질과 괴혈병과 개창으로 너를 칠 것

- 미침과 눈멂과 경심증으로 칠 것

- 소경이 어두운 데서 더듬는 것과 같이 백주에도 더듬고 형통치 못할 것

- 항상 압제와 노략을 당할 것

- 약혼녀가 다른 사람과 잘 것

- 건축한 집에 거하지 못할 것

- 심은 포도원의 과실을 먹지 못할 것

- 소와 나귀, 양을 먹지 못하고 빼앗길 것

- 자녀을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나 능력이 없을 것

- 토지 소산과 수고의 산물을 빼앗기고 압제와 학대를 당할 것

- 네가 미칠 것

- 심한 종기가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이르게 될 것

- 너와 임금이 포로로 끌려가 목석으로 만든 우상을 섬길 것

- 모든 민족 중에서 놀램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

- 심은 종자를 메뚜기가 먹을 것

- 포도원을 벌레가 먹고 수확이 없을 것

- 감람나무 열매를 얻지 못할 것

- 자녀들이 포로로 끌려갈 것

- 모든 나무와 토지 소산을 메뚜기가 먹을 것

- 이방인이 높아지고 너는 낮아질 것

- 이방인에게 항상 꾸이고 꼬리가 될 것

 

더욱이 내일의 본문인 53절에서 57절의 내용은 더욱 비참하기 그지없습니다.

적에게 둘러 싸여 먹을 것이 없자 자기가 낳은 자녀를 잡아먹게 되는 일이 있을 거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이렇게 심한 저주의 말들을 주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자녀들에게는 가능하면 좋은 말, 칭찬과 격려의 말,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일 텐데 말입니다.

 

첫째, 불순종의 결과는 반드시 징계와 저주와 심판일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요 자기 백성들이라고 저주의 약속을 완화해 주시거나

유예하시기 않으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둘째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심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그 저주대로 되기를 바라거나,

저주가 임했을 때 너 그럴 줄 알았다고 고소해 하시는 분은 더욱 아니시겠지요.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저도 산하나 강산이에게 지금 잘못한 일들이 나중에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것을 경고하곤 하는데,

그것은 우리 아이들이 그것을 깨닫고 절대로 그러한 잘못된 길로 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우리의 악한 마음을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이 아닐까요?

평소에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에게는 공부하라는 말을 안 해도 됩니다.

컴퓨터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에게는 게임 좀 그만하라고 할 필요가 없겠지요.

잘못될 가능성이 별로 없는 자녀에게는 심하게 경고하지 않아도 별로 비뚤어지지 않지만

틈만 나면 나쁜 짓 일삼기 좋아하는 자녀에게는 특히 경고와 책망이 더 필요할 것입니다.

10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험과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체험한 출애굽 1세대가 다 죽고,

이제 출애굽 2세대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압평지에서 모세를 통해

불순종을 경고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성을 너무도 잘 아셨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경고하시고 계십니다.

그것은 오늘 제게도 동일하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경고의 말씀을 들은 우리는 도대체 왜 너무도 명백한 저주의 결과를 피하기는 커녕

멸망의 길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까요?

 

아마도, 불순종이 주는 현재의 달콤함 때문일 것입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데로 내려가느니라(잠26:22)

못마땅한 사람을 험담하고 비난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한 편으로는 속을 후련하게 해줍니다.

훔쳐 먹는 사과가 맛있다?

은밀한 죄가 주는 야릇한 상태도 우리를 멸망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성숙하지 않은 우리의 거친 기질과 습관도 불순종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저주의 경고가 실현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은 아닐까요?

불순종의 결과가 즉각적인 징계로 나타난다면 어쩌면 순종하기가 보다 쉬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이렇게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구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구나!"

그런데 실제의 삶에서는 하나님께서 곧 바로 우리를 징계하시지 않는 경우도 많고,

불순종의 결과가 당장의 형통과 풍요를 가져다주기도 하며,

순종이 오히려 고난과 핍박, 궁핍을 가져다주는 모순된 결과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것은 아마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기도 하고

원수마귀의 교활한 계략이 우리를 혼란에 빠트려 미혹하려 하기도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불순종의 결과가 궁극적으로 모든 재앙과 저주라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너무도 분명하게 증명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의 육신의 아버지께서는 2004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처음에는 위궤양으로 진단한 병원 의사의 말만 믿고 위궤양 약만 드시다가

별로 차도가 없어 서울의 큰 병원에서 정밀하게 검사한 결과

위암 말기이며 불과 4개월 정도밖에는 생존하실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런 불행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어있으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지옥의 형벌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하게 된다는 내용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다행스럽게도 하늘 아버지께서는 저의 기도를 들으셔서 아버지의 마음을 낮추시고 회개하게 하셨으며,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셨습니다.

그리고 의사의 진단대로 정확히 4개월째 되는 날 새벽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암 환자에게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얼마 후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경고를 하는 의사가

나쁜 의사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괜찮습니다. 별 것 아닙니다"라는 말로 마음을 위로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는 의사야말로 분명 무책임한 의사일 뿐만 아니라 부도덕한 의사일 것입니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영혼에게 아무런 경고도 해 주지 않고

인간적인 위로만 하며 평안하게 지내시라고 권면하는 그리스도인은 정녕 악한 자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3:18에서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오늘 저는 계속되는 불순종의 경고에 대하여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속히 돌이켜야할 저주의 형벌이 예정된 불순종의 죄는 무엇인가?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 부끄럽습니다.

정말 심각한 죄는 놔두고 적당히 드러낼 만한 것들만 얼버무리는 또 다른 죄를 범하지 않도록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아직도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하여 멸망과 저주의 경고를

비록 그들이 듣기 싫어한다 할지라도 분명하게 말하여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회를 보아서 지혜롭게 말입니다.

 

오늘따라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라는

4영리의 전도법보다

“이제 생명의 다리는 놓였고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어느 한쪽에 속해 살도록 스스로 결정해야만 합니다.

당신은 왼쪽의 불과 유황이 있는 둘째사망에서 영생을 보내실 것입니까?

아니면 오른쪽의 사망도 심판도 없는 영원한 영생이 있는 천국에서 보내실 것입니까?”라고

결단을 촉구하는 다리예화 전도법이 더 복음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제가 근무하는 회사의 직원들 중에 몇 해전 4영리로 전도했을 때는 영접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다리예화 전도법으로 복음을 다시 전했을 때 영접한 사람들이 몇 명 있습니다.

물론 그동안 영적 상태가 변화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학창시절 배운 한시 한 구절이 참 성경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良藥은 苦口이나 利於病이요 " (좋은 약은 입이 쓰나 병에는 이롭고)

" 忠言은 逆耳이나 利於行이라 " (충직한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는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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