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들이 어디에 또 있을까?(고후7:2~7)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하나님의 말을 해야 한다.
가르침을 받는 사람에게 오해를 받는다 할지라도
그 말을 바꿔서는 안된다.


무엇을 받기 위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속여 망치게 하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은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과
한 마음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며
생사를 같이하는 한 배를 탄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마음을 넓혀서, 우리를 받아 주십시오.
우리는 아무에게도 부당한 일을 한 일이 없고,
아무도 망친 일이 없고, 아무에게서도 속여서
빼앗은 일이 없습니다”(2)


“이것은 내가 여러분을 책망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전에도 말한 대로, 여러분은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어서,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사이입니다”(3)


받으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의 믿음과 소망을 주기 위해 가르치는 것을
확신한다면 그깟 오해가 무슨 문제가 될까?


그 때 받은 오해는 풀어질 날이 올 때에
더 기쁜 소식과 함께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의에 빠진 사람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디도를 돌아오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위로해 주셨습니다”(6)


“그가 돌아온 것만 아니라, 그가 여러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우리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가, 여러분이 나를 그리워하고, 내게 잘못한
일을 뉘우치고, 또 나를 열렬히 변호한다는
소식을 전할 때에, 나는 더욱더 기뻐하였습니다”(7)


사역이 가장 힘들때는 오해를 받을 때가 아닌가 싶다.
힘이 되주어야 할 사람들에게 받는 오해이기에...
예수님또한 가장 가까운 제자인 유다에게서 배신을
당하셨다.


바울역시 고린도 교인들에게 오해를 받았다.
하지만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고
그 오해는 하나님의 사람에 의해 풀어졌다.


가르친 말씀이 오해를 받을 때에,
그리고 그 오해가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오는
경우일 때에 해결 방법을 제시하여 주시는
듯 하다.


오해를 하는 사람을 묵상할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받는 한 사람을 묵상해야 한다.
여러사람에게 오해를 받더라도
한 사람에 의해 위로를 받을 수 있고
다 풀릴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개입이 있기에 가능하다.


오해가 두려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만 말씀이 제대로 전달이 된다면
내가 받은 오해는 기쁨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두려워 하지 말자.
위축되지도 말자.
사랑의 마음을 담고 확신을 가지고 가르치자


이런 사람들이 어디에 있다고...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평신도들을
또 어디가서 찾겠느냐고...
(2018.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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