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2018.05.25 08:25

박상형 조회 수:46

내가 어디로 가겠습니까?(사85:1~13)


누가 구원을 받을 수있을까?
알 수 없다.
사람에게 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준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공평하고 의로우신...


그럼 나는 구원받았을까?
그렇다고 본다.
그러나 내가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그 근거는
나의 어떤 조건 때문이 아니다.
내가 가진 조건의 구원과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럼?
그 조건은 내 삶에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구원받기 전의 삶이 아니라
구원받은 후의 내 모습말이다.


(9)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다.
그 말씀에는 개가 토한 것을 다시 삼키지 못하게 하는
신비한 약이 들어있다.


(8)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며
혹 잠시 경건한 모습을 보일지라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사람이다.


구원받은 사람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그의 주변은 성공과 욕망과 자랑이 아니라
사랑과 진리, 의와 화평이 둘러싸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
무엇이 더 내게 기쁨을 주는 지를 보면
내가 받은 구원의 내용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인지
내가 내게 선사한 구원인지...
내가 내게 주었으면서 하나님이 주셨다
우기는 사람을 많이 본지라...


말씀은 감정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감정만은 말씀을 배제한다.
감정이 말씀안에 있어야 할 이유이다.


말씀안에 있으면서 감정을 드러내는 것과
말씀밖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많이 다르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좋은 것과
세상이 주는 좋은 것의 차이랄까?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최고의 좋은 것인
말씀을 받았다.
그것이 예전의 나의 추악한 모습을 덮어주었고
지금도 나타나는 더러운 추악함과는 대판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그 놈이 아무리쎄도
혹시 그 놈에게 싸움에서 지는 한이 있어도
이제는 결코 그놈 편에 서고 싶지 않다.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는데 내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2018. 05. 25.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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