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을 가진 자와 함께 하는 떡 고물(행27:13~26)

순한 남풍이 불어 항해를 시작했던 바울의 
로마행 호송선이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을 만났다.
이로인해 배는 방향을 잡을 수 없었고
가는대로 쫒겨가게 된다.

배를 가볍게 하면 배를 어찌할 수 있을까 하여
짐과 기구를 모두 바다에 버렸지만
배는 여전히 통제할 수 없었으며
별도 달도 보이지 않고, 큰 풍랑도 멈추지 않아
모든 소망또한 없어져 버렸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될 일이지만
그 배에 탄 사람 중 한 사람도 죽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의 풍랑이라면 최소한 죽는 사람이나
실종자가 발생하게 되는것이 상식인데 말이다.

모드 인간적인 소망이 살아졌을 때
죄수의 신분을 가진 바울이 생명의 말을 
전하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이 로마황제인 가이사에게 보내리라는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고
그 덕분에 함께 항해하는 자들도 다 살려둘
것이라면서...
마치 죄인과 죄인을 호송하는 책임자의 신분이
바뀐듯하다.

하나님은 바울을 살려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바울 때문에 바울과 함께 하던 사람들의
생명까지 살려주신다.
바울의 임무수행에 그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목적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하면
떡 고물이 있다고 본다.
하나님의 목적을 가진 사람은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는
죽지 않는다.
의미없는 죽음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지금 편안한가?
내 삶에 유라굴로 라고하는 광풍이 불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지 마라
혹 작은 징조들이 보이지는 않는가?
그리고 그 징조들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누구와 함께 하고 있는가?
나에게 하나님의 목적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다면 
최소한 목적이 있는 사람곁에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의미없는 죽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바울의 목적은 로마황제에게 가는 것이었지만
그 내용은 예수안에 있는 생명을 전하기 위해서 였다.
나의 목적은 무엇인가?

어제는 그 더위에 뒷산인 두타산에 다녀왔다.
해발 1353미터, 산에서 머문 시간은 
잠시 쉬는 시간 합해 10시간 30분 가량
아침 5시30분에 올라가서 오후 4시에 내려왔다.

내 산행의 목적은 건강증진과 살빼기,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뻐근한 것이 건강증진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살은 좀 빠졌다.

그런데 어제 하산하는 도중, 혼자 물도 없이 
그것 스틱 달랑 하나들고 산을 올라오는
한 중년여성을 만났다.

그 험한 산을 겁도 없이 절뚝거리며 그것도 처음보는
낮선 아저씨와 함께 올라오길래 지금 올라가는 것은
무리라고 말해 주었더니 우리말에 설득이 되어
우리와 함께 하산을 했다.

그 여성, 우리 때문에 살았다(?).
우리 안 만났으면 죽지는 않았어도 죽도록 고생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10시간 코스를 두시간 올라왔는데
그것이 오후 2시였으니... 참 어이가 없었다. 
산을 올라오는 목적도 없는 여자였다.
왜 올라가느냐고 했더니 그냥이라고 한다.

제발 목적은 가지고 다녀야 겠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목적이 생명을 위한 
목적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몸도 뻐근하고 안 쑤시는데는 하나도 없지만
그 생명의 목적을 위해 오늘도 살고자 한다.
하나님께 묵상으로 안부 인사하고 시작~~~ 
(2018. 08. 16.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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