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직 한 창 때 인데요!”

2018.10.15 08:42

박상형 조회 수: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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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직 한 창 때 인데요!”(시102:12~28)



고난은 견디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고난의 촛점은 하나님에게 있다.

(12)오 여호와여, 그러나 주께서는 왕좌에 영원히 계실 것입니다. 주의 명성이 온 세대에 걸쳐 전해질 것입니다.



고난중인 시편기자가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되면

그것이 더 이상 고난이 아니다.

하나님보다 더 큰 고난은 없기 때문이며

그 고난은 하나님표 고난이기 때문이다.



반면 사단표 고난은 하나님을 모르게하고

말씀을 잊어버리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고난이 왔는데 하나님을 묵상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고난을 이긴 것이지만

여전히 전과동으로 말씀을 소홀히 하고 있다면

사단에게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고난을 해석해야 한다.

고난을 잘 해석하는 방법은

그 고난을 하나님에게 가져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고난을 나에게 불리하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23)그분은 내가 아직 한창때인데도 내 힘을 꺾으셨고 내 삶을 단축시키셨습니다.

(24)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오 내 하나님이여, 내가 아직 한창때니 나를 데려가지 마소서. 주의 날은 모든 세대까지 계속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고난을 나에게 유익하게 

해석해 주신다.

(시119:71)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난 때문에, 나는 주님의 율례를 배웠습니다.

고난당함이 내게 유익이라



고난을 해석하면 고난을 당하는 나의 태도가

결정된다.



고난이 왔는데 고난 전과 다름없이 살아간다면

그것은 고난을 잘 해석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 묵상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었다면

그것을 고난을 잘 해석한 것이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내가 성숙해지길

바라신다.



성숙해 진다는 것은

키가 커지고 몸집이 부풀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앞에서 나는 작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 한 창 때인데

왜 데려가려고 하시냐는 말이 나올 수 없다.



안타깝다.

고난이 찾아왔는데도 전과 다름없이

사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나는 한 창 때이니 그 고난 내가 이길거야!

라고 생각해서 일까?



참 감사하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하나님안에 있게 하셨으며

하나님을 전하는 일까지 하게 하시니 말이다.

(28)주의 종의 자녀들이 계속 이어질 것이고 그들의 후손이 주 앞에 설 것입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고 자만은 똥물이다.

죄란 놈이 내가 이미는 지났으나

아직의 상태에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약점을 잡고 늘어지겠지

하지만 나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 또 너란 놈을 아니 

(25)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셨고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작품입니다.

(26)그것들은 다 없어지겠지만 주는 계실 것입니다. 그것들은 다 옷처럼 낡아 해질 것입니다. 주께서 옷을 갈아입듯 바꾸신다면 그것들은 없어지겠지만

(27)주께서는 여전히 한결같으시고 주의 날들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내 한결같으신 하나님만 꼭 붙잡을 테니 말이다.

(2018.10.15.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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