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가 헌금을 한 이유

2019.02.07 05:53

박상형 조회 수: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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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가 헌금을 한 이유(막12:35~44)



서기관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서기관들을 조심하라고 하신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이 아니다.

성경도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자들을 존경하라고 했다.

(딤전5:17)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서기관들이 본질인 말씀을 가르치기 보다는

특이한 옷을 입고 다니며 대중들에게 존경을 받으려 하고

개인적으로 사례금을 받는 등

외식에 치중하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38)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39)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0)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예전교회의 모습이 지금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

목사가 좋은 차와 좋은 옷을 입고

교회에 성도가 많은 것을 자랑으로 삼으며 

그것으로 존경을 받으려 하고

심방과 안수를 해주고 많은 돈을 받는

비본질에 충실한 모습 말이다.



마음을 하나님께 두도록 가르치는 성경의 교훈에

깊이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그 일에 전적으로 종사하면서 

사람들의 칭찬과 자기만족에 몰입한다는 것은 정말 

비참하고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가장 큰 자부심과 기쁨은

자신이 전한 말씀을 들은 사람이,

함께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공부한 사람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으며

자신도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렇지 않으니 예수님도 조심하라고

하신 것 아닐까? 



예수님이 자신의 모든 생활비를 헌금한 과부에게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도 헌금을 많이 한 사람을 좋아하시나?



헌금을 한 두 부류가 있었다.

부자와 가난한 과부,

부자는 헌금함에 돈을 많이 넣었지만

과부는 겨우 두 렙돈을 넣었다.

(지금 돈으로 이 천원 정도의 가치가 있을려나?)



하지만 예수님이 보신 것은 

헌금함에 넣은 액수를 보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수중에 남아있는 마음을 보신 것이다.



부자들은 풍족한 중에 넣었기에

헌금을 한 후에도 아직 많이 남아있었지만

과부에게는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44)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부자는 헌금을 많이 했지만 

풍족함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고

과부는 모두 하나님께 드린 상태였다.

헌금함에 넣기는 과부가 더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과부는 가진 것이 거의 없이 가난했다.

그런데도 헌금을 했다.

하나님이 그 과부의 마지막 생활비인 그 돈을 받기를 

기뻐하실까?



과부는 지금 헌금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 아닐까?

그런데 왜 모든 돈을 털어 헌금을 했을까?



혹시 당시의 분위기가 헌금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 아니었을까?

헌금을 하면 복을 받는 다는 서기관들의 말에 

현혹이 되어서 낸 것은 아닌가 해서 말이다.

예수님이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서기관들을 

조심하라고 하셔서 말이다.



그 과부가 낸 돈으로 성전을 아름답게 가꾸꺼나 수리하면

그 안에 앉아 계신 하나님의 마음이 편하실까?

가시방석에 앉아계신 것 같은 느낌 아닐까?



성전을 아름답게 가꿀 돈으로 고아나 과부를

도와줄 수는 없었을까?

그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였는데?


예수님께서 과부를 칭찬하신 것이라기 보다는

과부의 돈 마저 뜯어내려는 당시의 교회분위기를

성토하시려는 것 아닐까? 



생활비 전부를 드린 과부를 칭찬하기에 앞서

그 과부가 없는 돈으로 헌금을 드려야 했던 

상황에 마음이 아프다.



하나님이 정말 나의 모든 재물을 원하실까?

아니다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받으신다.



하나님께 드린다는 나의 마음이

풍족하게 남아있는지 아니면 과부처럼

다 드렸는지를 보실 것이다.



말씀을 전하고 가르친다지만

돈과 명예, 자랑에 기웃거리고 있다면

다 드리지 못한, 여전히 자신의 풍족함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나는 내 삶을 풍족하게 해 줄 다윗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 전부를 드린

예수님을 기뻐하며 그 분의 삶을 좆아가는 것이다.



당신의 전부를 드려서 나를 사신 분을 위해

나도 마음의 전부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믿음이 아닐까?

(2019.02.07.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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