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홀히 취급되는 구원

2019.03.03 07:42

박상형 조회 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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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홀히 취급되는 구원(히2:1~9)



내가 알고 있는 구원은 어떤 구원일까?

내가 혹시 구원을 소홀히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3)하물며 우리가 이렇게도 귀중한 구원을 소홀히 하고서야, 어떻게 그 갚음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 구원은 주님께서 처음에 말씀하신 것이요, 그것을 들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확증하여 준 것입니다.



어제 순원과 맛집 이라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우리가 크리스쳔이라는 것을 안 주인은

틈을 주지 않고 말을 해댔다.



자신이 하나님과 어떻게 얼마나 많이 대화를 하는지 

자신의 신령함을 말하고 싶어하였고,



자신의 가게에 손님이 많고 장사가 잘되는 이유는

하나님을 잘 믿는 것 때문이며

또 늘 착한 일을 많이 함으로 하나님이 계속해서 장사를 

잘되게 해주신다는 자랑이었다.



그 사람이 알고 있는 구원은

장사가 잘되는 것과 열심있는 믿음이 상당히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혹시 장사가 잘 안 되거나

가난하게 살아도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식당 중앙에 가스배관이 놓여 있어서

순원도 나도 한 번씩 걸려서 넘어질뻔 해서

혹시 손님 중 여기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 없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런 것은 별로 신경 안쓰고 음식 맛만 있으면 되며 

돈 만 벌면 된다는 사고를 가진 그런 전형적인 기복의

크리스쳔 사장님 같이 보였다.



그런 분들을 대할 때마다

산을 옮기기 위해 삽자루를 들고 큰 산을 마주대한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낀다.

내가 왜 그런 기분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기복신앙, 율법의 틀,

이건 정말 깰 수 없는, 깨지지 않는 방탄유리 같은 것 일까?



구원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구원을 성경이 아닌 자신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다.

(2)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효력을 내어, 모든 범행과 불순종하는 행위가 공정한 갚음을 받았거든,

(5)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말하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의 지배 아래에 두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인과응보의 구원관을 지닌 천사들의 

손 아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탄도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정도는 해야되지 않느냐고 시험을 했다.



만약 인과응보가 맞다면,

구원받은 후에도 지은 죄로 인해 나는 이미 죽었어야 한다.

그리고 살아있을 사람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인과응보가 맞다면 죄를 지었을 때나

착한 일을 했을 때 같은 적용을 받아야 한다.

좋은 것만 적용을 받는 것은 옳지 않다.



잘 믿으면 잘 살게 된다는 것은 결코 믿음의 공식이 아니다.

잘 믿으면 숫자가 늘어나는 부흥도 아니다. 

말씀으로 살아난 숫자가 중요한 것이지

교회에 안에 있는 숫자는 그리 중요치 않다.



그 많은 숫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부흥의 증거이다.



말씀을 들으려고 하고,

말씀을 배우려고 하고,

말씀을 읽으려고 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말씀에 삶을 거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났다면

부흥이 맞다.



하지만 누군가가 병에서 낫고

누군가의 헌신과 열정으로 사람수가 늘어났으니

너도 그렇게 해야 쓰지 않겠느냐는 하는 것은

미안하지만 부흥과 거리가 멀다.



그것은 어쩌면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음을 맛보신

예수의 은혜의 구원을 모르고 있거나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소홀히 대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9)예수께서 다만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낮아지셔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받아쓰신 것을, 우리가 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셔야 했습니다.



내가 알고 구원이 어떤 구원인지는

내가 하는 믿음의 말과 믿음의 행동이 증명한다.



슬프다.

내가 많이 사랑하고 때론 존경하는 이들의 구원관이 

말씀에서 알려주는 구원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율법의 틀, 정말 무시무시한 사탄의 무기이다.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구원을

키 없이 흘러가는 배처럼 결코 소홀히 대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잘못 알아서는 안된다.

혹시 잘못 이해해서도 안된다.

여차 하면 들어가 갇혀버리는 율법의 틀에 

들어가서는 안된다.



그래서 매일 말씀을 뜯고 씹고 맛본다.

하나님을 위해 사용을 해도 부족한 시간을 낭비한다고

유다과 사람들에게 핀잔들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데 사용하고 있다.



어제 오늘의 말씀을 살짝 읽고 자서 그런가

아침에 일어나니 입이 쓰다.

(2019.03.03.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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