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2019.02.21 06:57

박상형 조회 수:4

<style type="text/css"> p.p1 {margin: 0.0px 0.0px 0.0px 0.0px; font: 11.0px 'Apple SD Gothic Neo'; -webkit-text-stroke: #000000} p.p2 {margin: 0.0px 0.0px 0.0px 0.0px; font: 11.0px 'Apple SD Gothic Neo'; -webkit-text-stroke: #000000; min-height: 13.0px} span.s1 {font-kerning: none} </style>

어찌하여(막15:33~47)



예수님이 돌아가셨다.

하나님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고 큰 소리를 지르고는

숨을 거두셨다.

(34)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어찌하여 죽기 전에 이런 믿음없는 말씀을 남기신 것일까?

죽음이 주는 고통 때문에?

하나님과 분리되고 버림받았다는 그 찢어지는 마음 때문에?



어찌하여 예수님이 총살당하기전 대한 독립만세를 외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보다 못한 소리를 내 뱉고 

죽으신다는 말인가?



제자들에게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열정적으로 말하며 다니시던 분이,



그러면 안된다며 죽음을 가로막는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사탄이라고 호통을 치시던 분이,



법정에 끌려와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짓증언을 늘어놓을 때도

의연하게 한 마디 변명도 안하셔서 빌라도를 놀래케 하셨고

갖은 모욕과 수모를 꿋꿋이 이겨내신 분이,



어찌하여 이제와서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것 같은

나를 버리셨나는 원망의 말을 하실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말의 의미가 내가 알고 있는 

원망의 의미와는 조금 다른 듯 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백부장이

“그럼 그렇지!” 라는 아래로 보는 말을 하지 않고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며 위로 보는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39)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백부장은 예수님의 무엇을 보고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고백을 했을까?



예수님의 죽으심은 일반 사람의 죽음과 다르다.

일반 사람의 죽음은 죄로 인함이지만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 용서, 즉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가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죄를 지고 가시기 위해선 모든 죄를 토해내야 한다.

따라서 예수님의 어찌하여 라는 마지막 말은 

마지막 죄까지 토해내는 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죄까지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죽기 전,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말,

죽기 전, 인간에게 생기는 마지막 마음,

그 말과 그 마음이 바로 어찌하여 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예수님은 어찌하여 라는 말을 가지고 가셨다.

이제 예수의 죽음을 믿는 사람의 입에서는

어찌하여 라는 말이 나와선 안된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빌라도에게 요구하고 십자가에서 내려 장사를 지낸다.

(46)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예수님이 장사될 때 나의 모든 죄도 장사를 지냈다.

죄를 모두 장사지냈는데 어찌하여 또 죄를 지을 수 있단 말인가?

죄를 모두 용서받았는데 어찌하여 여전히 죄와 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내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장사지낸 죄가 아니다.

내가 친하게 지내야 친구도 역시 죄가 아니다.



(갈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바라보아야 할 분은 예수이고

내가 친해야 할 것은 말씀이다.

(47)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어찌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과 절친을 맺을 수 있다는 말인가?



내 절친은 말씀이다.

내 절친은 말씀과 친한 믿음의 지체들이다.

내 친구의 기준은 말씀이다.

친구는 말이 통해야 하니까!

어찌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



오늘도 절친과 반갑고 기쁘게 하루를 시작한다.

말이 잘 통하는 절친과 함께...

(2019.02.21. 목요일)


카페 정보

회원:
3
새 글:
0
등록일:
2016.12.07

로그인

오늘:
3
어제:
5
전체:
69,167

신입 회원 소식

게시글 랭킹

댓글 랭킹

현재 접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