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준비한 장소

2019.03.16 09:26

박상형 조회 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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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준비한 장소(히9:1~10)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한 규칙을 준수하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사람이 준비한 장소가 있었다.



그 곳에는 방이 두개 있었는데

첫번째 방을 성소라고 불렀고

두번째 방을 지성소라고 불렀다.



첫번째 방에는 제사장들이 제사의식을 집행했고

두번째 방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었다.



두번째 방인 지성소에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언약궤가 놓여 있었다.



세상어느 곳도 좁으신 크신 하나님이

그 작은 상자안에 머물러 계실 수는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고 (출25:8)

이스라엘은 그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유익을 위한 도구로 

이용했고, 하나님을 자신의 도우미로 전락시켰다.



첫번 째 방과 두번 째 방은 휘장으로 막아놓았으며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두 번째 방인 지성소로

가야 했는데 아무나 갈 수는 없었고

일년에 한 번, 대제사장만 갈 수 있었다.



첫번째 방을 거치지 않고 두번 째 방으로 직접가는 길은

없었다.

하나님을 만나는 대제사장은 자신의 죄를 씻는 

정결의식이 필요했으며 만약 이를 어길 시에는 죽음을 당했다.



대제사장은 자신의 죄와 백성들이 모르고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하나님께 바칠 피를 가지고 들어갔다. 

(7)그러나 둘째 칸 장막에는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만 들어가는데, 그 때에는 반드시 자기 자신을 위하여, 또 백성이 모르고 지은 죄를 사하기 위하여 바칠 피를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제도를 따라 제사를 드리긴 하지만

그것이 예배자의 양심까지 완전하게 할 수 없었고

이 제도 아래에서 드려진 예물과 제물은 예배의 형식일뿐

본질에는 다가가지 못했기에 다시 재 정비 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채용 제도였다.

(9)이 장막은 현 시대를 상징합니다. 그 장막 제의를 따라 예물과 제사를 드리지만, 그것이 의식 집례자의 양심을 완전하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10)이런 것은 다만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예식과 관련된 것이고, 개혁의 때까지 육체를 위하여 부과된 규칙들입니다.



과거의 불안전한 예배가 모르고 지은 죄까지 용서할 수 있었다면

그것이 보완이 된 지금의 예배는 어디까지 용서될 수 있을까?

알고 지은 죄까지도 용서될 수 있다는 말 아닐까?



과거의 제사가 집례자의 양심까지는 완전하게 해주지 못했다면

지금의 제사는 양심을 완전하게 해 줄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사람이 육체로 짓는 죄는 구원과 관계가 없다.

그렇다고 구원받은 사람은 죄를 막 짓고 다녀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죄의 차원이 다르다는 말이다.

육체로 짓는 죄는 육체가 벌을 받으면 된다.

그렇다고 구원을 못 받거나 받은 구원이 취소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구원받지 못할 죄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다.

그것은 세상과 친구가 되는 죄다.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

(약4:4)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나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지 않기 위하여 말씀을 본다.

친구하자고 덤비는 세상에 딴지 걸리지 않기 위하여

말씀을 묵상한다.



내가 말씀을 묵상하는 이유는 이런 치열함 때문이다.

술 안 먹고 담배 안 피는 것으로 믿음을 정의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세상의 전략이다.

그 정도는 해야 되지 않겠냐는 말인 것 같지만

그 정도면 됐다는 말이다.



그 정도면 됐으니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 생각에 갇혀 있으면 안된다.



이제는 누구나 하나님께로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져 열렸다.

이제는 사람이 준비한 장소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난 말씀을 본다.

밝고 환한 아침 햇살과 함께 오늘 만나주시는 하나님은 

부드럽고 따뜻하시다.

(2019.03.16.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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