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하고 싶지 않은 음성

2023.08.18 06:23

박상형 조회 수:0

거부하고 싶지 않은 음성(22:30-23:11)

 

 

1. 증언하지 않은 바울

 

천부장이 소요의 진상을 알기 위해

바울을 악명 높은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세웠다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말을 시작하지만

얼마 전에 백성들 앞에서 한 증언과는 내용이 사뭇 달랐다.

 

 

결국 바울은 산헤드린 공회에서는 증언을 하지 않고

오히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간 싸움을 붙이는

발언을 하게 되고는 그곳을 벗어나게 된다.

 

(7)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증언을 위해 살아가는 바울이

산헤드린 공회에서 증언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2. 증언하지 않은 이유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인의 최고 법정이다.

산헤드린 공회에 최고 권위는 율법이었다.

 

 

공회 앞에선 바울이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오직

바른 양심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말을 시작하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의 입을 치라는 명령을 내린다.

 

 

왜 아나니아가 바울의 입을 치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는 바울의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했으며

바울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바울의 대답은 오히려 하나님이 너를 치실 것이라는

말이었다.

 

(3)그러자 바울이 그에게 말하였다. "회칠한 벽이여,

하나님께서 당신을 치실 것이오. 당신이 율법대로 나를 재판한다고

거기에 앉아 있으면서, 도리어 율법을 거슬러서, 나를 치라고 명령하시오?"

 

 

바울이 대제사장에게 쎄게 나간 이유는

율법의 최고 수장이 무슨 율법을 어겼는지는 따져보지도 않고

율법대로 재판한다면서 가장 먼저 율법을 어기는

율법을 모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3. 증언하지 않은 이유(2)

 

바울이 증언을 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대제사장 옆에 있었던 딸랑이들 때문이었다.

 

 

바울의 옆에 있던 사람들은 율법을 모독하는

대제사장의 수치스러운 행위에 신경이 쓰이기보다는

대제사장이 욕먹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율법은 모독을 받아도 대제사장은

모독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저들의 마음이었음을 보고는

바울사도는 이런 곳에서 더 이상 증언을 할

필요가 없음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증언을 하는 대신 싸움을 붙이는 말을 하게 된다.

 

 

4. 교리

 

바리새파는 부활이 있다고 믿는 파였고

사두개파는 부활이 없다고 믿는 파였다.

이 두 파가 나는 부활로 심문을 받는다는

바울의 말로 인해 서로 싸운다.

 

(6b) 나는 지금, 죽은 사람들이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부활을 믿느냐 안 믿느냐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구원자 예수가 이 세상에 오셨고

부활하셨다는 것이다.

 

 

예수를 알게 되면 부활은 자연스럽게 믿게 될 것이고

예수를 알게 되면 하나님의 뜻도 자연히 알게 될 것인데

이 두 파는 예수는 알려고 하지 않고

자기들의 교리만 주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교리는 예수만 바르게 알면 해결되는 일 아닐까?

교리가 예수가 아닌 사람을 위해 세워지니까

지금까지 교회가 싸우는 것이 아닐까?

 

 

5. 증언

 

두 파의 분열을 유도하며 공회에서 나온 바울에게

그날 밤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신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하나님이 들려주신 음성은

이 같은 힘든 일을 로마에서도 겪으라는 말이었다.

 

(11)그 날 밤에 주님께서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과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한다."

 

 

이 말은 예루살렘에서 죽을 수 있었던 것처럼

로마에서도 죽을 수 있다는 말이었는데

바울이 이 말에 전혀 토를 달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사람의 음성과 하나님의 음성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음성에는 거부할 수 있는 불안함이 들어있지만

하나님의 음성에는 순종해야만 하는 완전함이 있다는

것 말이다.

 

 

모든 사도들과 바울이 들은 그 음성을 나도 듣고 싶다.

매일 듣지만 지겹지 않고 또 듣고 싶은 그 음성,

듣기 좋고 보기 좋은 내용이 아닌

거부하고 싶은 내용뿐이지만 전혀 거부하기 싫고

거부하고 싶지 않은 그 음성을...

(2023. 08. 17.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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