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

2023.08.09 07:51

박상형 조회 수:1

빵 먹으면서 하는 이야기(20:1-12)

 

 

1. 기절한 것이 아니다.

 

바울의 설교를 듣던 유두고가 3층에서 떨어져 죽었다.

기절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죽었다.

사람들은 기절했다가 깨어난 것에 위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살아난 사실에 큰 위로를 받았다.

 

(12)사람들은 그 살아난 청년을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래서 그들은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다.

 

 

위층에 있던 바울사도가 떨어져 죽은 유두고를 안고는

아직 살아있으니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한다.

 

(11)바울이 내려가서, 그에게 엎드려, 끌어안고 말하기를

"소란을 피우지 마십시오. 아직 목숨이 붙어 있습니다" 하였다.

 

 

이 말은 기절했다는 말이 아니라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 말은 죽었다 살아난 경험자가 한 말이었다.

 

 

2. 누구 책임일까?

 

죽은 유두고를 두고 소란이 일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두고 소란을 벌였을 것이다.

 

 

좁은 장소를 빌려 주고 등불을 많은 켜놓은 집 주인의 책임일까?

아니면 쉬는 시간도 없이 오랫동안 강론을 한 바울사도의 책임일까?

그것도 아니면 잠을 잔 유두고가 잘 못 한 것일까?

 

 

아니다. 이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죽은 유두고가 살아났기 때문이었다.

유두고가 살나나지 않았다면 책임을 묻고 따져볼 수 있겠지만

살아났기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예수님도 죽으셨다.

그것도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위에서

 

 

예수의 죽음은 누구의 책임일까?

예수를 모함한 유대인들일까?

아니면 예수를 지키지 못한 제자들?

그것도 아니면 죽을 줄 알고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

 

 

모두 아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누구의 책임은 없다.

예수님은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무엇을 잘 못 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부활하시려고 죽으신 것이기 때문이다.

 

(8:31)그리고 예수께서는, 인자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의 부활은 우리 모두에게 책임을 면제시켜 주신다.

부활의 복음은 세상에 매여서 소란 떨며 사는 나에게

죽지 않았으니 소란 떨지 말라고 하신다.

그것은 부활을 모르는 죽은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3. 죽음이 끝이 아니다.

 

유두고가 죽었다면 모임이 중단되었겠지만

유두고가 살아났기에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11)바울은 위층으로 올라가서, 빵을 떼어서 먹고 나서,

날이 새도록 오래 이야기하고 떠나갔다.

 

 

사람의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나는 이야기 이지만

이 이야기는 죽음으로 중단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죽은 사람 살리고 빵 먹으면서

계속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바울사도의 이야기까지는 아니겠지만

내 삶의 작은 이야기책에도 몇 사람 정도는 살리고 갔다고

기록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날이 새도록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고 다음 목적지로 가는

바울사도처럼

내가 할 이야기도 아직 많이 남아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나도 지금 빵을 먹으며 말씀을 묵상하고 있다.

(2023. 08. 09.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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