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오지랖

2020.05.22 08:06

박상형 조회 수:2

오늘도 오지랖(신22:1~12)


이웃집 소나 양이 길잃고 헤매는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길잃은 소나 양의 주인이 멀리 살거나
주인을 모른다면 찾는 사람이 올때까지 보관해 둘 것이며,
이웃이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때 못 본체하지 말고
나귀나 소가 길거리에 넘어져 있을 때 일으켜 세워 주라고 한다.


오늘 말씀을 요즘 말로 하면
한 마디로 오지랖을 부리라는 말이다.


오지랖,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말한다.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대세인 요즘 시대에 이런 오지랖은
현실무감각 행동인데...


그리고 좋은 뜻으로도 사용되지 않는 이 말을
어떻게 나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


나는 오지랖이라는 말을 싫어하지 않는다.
나는 오지랖이 넓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특히 아내에게서...


내가 그 말을 들으면서도
그리고 가끔씩 오해도 받으면서도
여전히 오지랖을 떨고 다니는 이유는
그것이 내 유익을 위한 오지랖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 오지랖때문에 손해보는 일이 더 많았다.


수영장에서 오지랖을 떨다 만난 한 노부부는
지금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내가 수영장에 들어서면 저 멀리서부터 찾아와서
내가 무안할 정도로 인사를 하고 반가워 한다.


선생님 소리를 듣자고 한 일이 아니라
선배 수영맨으로서 몇 번 잘못된 폼을 잡아준 것 뿐인데...


나는 평신도이다.
그런데 오지랖을 떨어서 성경을 가르친다.
평신도는 성경을 배워야지 가르치면 안된다는 말을
그 동안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듣고 있다.


하지만 그 말에 개의치 않고
쓰린 마음을 가진 채 여전히 성경을 가르친다.


성경을 알면 안 알려줄 수가 없다.
말씀을 잘못 알고 있는 가는 사람을
그냥 모른 척하고 놔둘 수가 없다.
그건 죄악이라 생각한다.


이 일은 한지 20여년이 지나가지만
그 오지랖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최근 코로나 19로 인해 잠시 쉬고 있던
성경공부 모임은 6월초 다시 시작 예정이다.


이제 나이가 드니 역동적이고 활동적인 오지랖은
없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말씀에 대한 오지랖은 결코 포기할 수 없고
결코 식지도, 없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너무 재밌고, 너무 하고 싶고
안 하면 기운이 빠지니 말이다.
말씀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실감나게 해 준다.


남녀가 옷을 바꿔 입지 말라고 하신다(5)
만약 내게 말씀이 없었다면
내가 여자옷을 입고 이것도 오지랖이라고 우겼을 지 모른다.


말씀은 내 오지랖을 세상의 그것과 구별시켜 줄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한 것과
하늘의 생명을 전해주기 위한 것을,


나만 살자고 하는 일과
함께 살자고 하는 일을...


영원한 가치가 있는 일과
잠간의 기쁨이 있는 일을...


오늘도 나는 이렇게
말씀으로 오지랖을 떨고 있다.
(2020. 05. 22.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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