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다른 증언

2020.05.17 07:47

박상형 조회 수:14

서로다른 증언(신19:1~14)

 

 

어떤 증언에 대한 반대증언이 나왔을 때

서로 다른 증언을 한 두 사람은

제사장들과 재판관들앞에 선다(17)

 

 

재판관 앞에 서는 것이야 

증언의 진의를 가려야 하니 그렇다 치고

제사장들앞에는 왜 서야 하는 것일까?

 

 

하나님앞에 서라는 말일까?

진실을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는 의미일까?

 

 

나 역시 묵상글을 쓸 때

하나님앞에 서는 마음으로 쓴다.

 

 

내 묵상글에 관심을 보이며 읽던 어떤 분이

다시는 내 묵상글을 않 읽겠다며 화를 내면서

긴 답글을 달았다.

 

 

그 분이 내 묵상글을 안 읽겠다는 이유는

거두절미 하고 내 묵상글은 하나님의 생각보다는

내 생각을 더 한 글이고,

나라를 위해 기도한번 안하고 쓴 글이라면서며

제발 기도하면서 글을 쓰라는 충고까지 덧 붙였다.

 

 

최근에 코로나에 대한 대처등 나라가 잘하는 것을 

살짝 칭찬한 글이었는데

그분은 나라가 칭찬받는 것이 싫었을까?

그 분에게 있어 나라 걱정은 나라의 정책을 비판하고

단죄하며 미워하는 것이었을까?

 

 

묵상글에 은혜받았다고 할 때는 한 줄로 간단히 표현하던 그가

마음 안드는 묵상글에는 수십줄로 격하게 표현을 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조금 씁쓸해진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나라를 위해서는 기도를 많이 못했다.

그의 말처럼 금식해보며 기도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기도는 하고 있다.

내 나라의 공산화를 막아달라는 거짓정보를 듣고 

그 말을 정의라 여겨 나라를 구해달라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내 나라, 내 민족, 내 회사동료들이

하나님 나라를 알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하고 있다.

 

 

정의가 실종되고 왜곡되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운행되고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위해 더 없이 기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 말, 이 마음에 거짓이 없음을 확인받기 위해

오늘도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시고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앞에 선다. 

 

 

내 말, 내 마음이 위증이라면

나는 하나님께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위증을 하는 이유는 남을 모함하기 위해서이다.

위증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모르실거라는 것 때문이다.

두 사람이 제사장 앞에 서라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고 있다는 의미이다.

 

 

어떤 말이나 정보가 내게 도착했을 때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는

베뢰아 신사들의 마음이 정말 필요하지 싶다. 

 

 

아무리 곰곰히 생각해봐도

아무리 믿음과 상식의 끄트머리를 꺼내놓고 적용해보아도

하나님보고 꼼짝말고, 까불지 말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그 사람을 목회자로 인정하며

열렬히 따르고 추종하는 그 집회가 정말 나라를 위하는 

기도집회인지 의문이 든다.

 

 

서로 다른 증언자들은 제사장 앞에 서야 한다.

서로 다른 증언자들은 세상의 상식앞에 서기 보다는

말씀 앞에 서야 한다.

그리고 말씀이 진위를 가려주실 것이다.

 

 

말씀앞에 서서 말씀에 비추어봤을 때

내 마음과 내 묵상의 내용이 거짓증언이라고 판명이되면

나는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을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2020. 05. 17.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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