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고 담고 또 담고

2020.05.09 08:00

박상형 조회 수:5

담고 담고 또 담고(신15:12~23)

 

 

노예 제도는 만들지 마라!

너희가 이전에 노예 생활을 겪어 봤으니

그 더럽고 추한 폐단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느냐?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대해서는 절대 안된다.

 

 

 

뭐 이렇게 얘기하시면서

노예제도에 반대하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하나님이 노예제도를 인정하시고 있다.

(12상)네 동족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가 네게 팔렸다 하자,

 

 

다른 것은 하지 말라고 말하시면서

이렇게 폐단이 많고 인간이 인간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예제도는 왜 가만놔두시는 것일까?

 

 

노예제도는 아브라함 때에도 있었다.

인간이 돈을 사용하는 한 노예제도는 언제나 있을 것이다.

가난한 자가 항상 있는 것처럼,

 

 

그러나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노예와

인간들이 생각하는 노예의 개념이 다르다.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노예는 

부속물의 개념이 아닌 한 식구의 개념이다.

 

 

내게 팔린 노예는 칠년 째 되는 해에 자유롭게

해 주어야 하시는데 그 이유가 

내가 부려먹을 만큼 부려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내게 6년동안 섬겼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12하)만일 여섯 해 동안 너를 섬겼거든 일곱째 해에 너는 그를 놓아 자유롭게 할 것이요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노예는

내가 부려먹고 막 대해야 할 그런 사람이 아니라

나를 섬겨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를 자유롭게 놓아줄 때는

빈손으로 쫒아내는 것이 아니라

후하게 주어서 보내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복 그대로 그에게 주라고 하시면서(14)

 

 

그래서 그가 주인을 떠나지 않고

영원한 노예가 될 생각이 들수도 있게 된다는 것이다(16~17)

 

 

노예하면 지긋지긋 하고,

한 일에 비해 좋은 소리 못 들으며,

더럽고 아니꼬운 일도 해야 하는 그런 것이 생각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결코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들이 만든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노예인 엘리에셀에게

아들 이삭의 베필을 구해오라는 중책을 맡겼다. 

그리고 엘리에셀은 주인인 아브라함의 말에

토시하나 달지 않고 억지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할 말은 다 하면서도 같은 마음으로

이삭의 베필을 구해서 돌아왔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노예가 데리고 온 

여자와 아들 이삭을 결혼시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아니다.

우리가 다시 써 내려가야 할 주인과 노예의 관계이다.

 

 

돈으로 사람의 관계를 정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관계를 정한다면,

그리고 돈이 내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내 안에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 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있어야 하며

내 안에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 마음이 나와야 한다.

 

 

문제는 어떤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 제도를 읽고 해석하고 있느냐이다.

 

 

세상에 더 이상의 주인과 노예는 없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조차도 나를 

노예에서 친구로, 그리고 신부로 격상시켜 주셨다.

 

 

세상을 잘 해석하자. 그리고 바르게 해석하자

사람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은 돈으로 사람을 부려먹지만

나는 그를 식구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담고 또 담기 위하여...

 

 

그리고 내가 과거에 노예였음을 결코 잊지 말고...

(2020. 05. 09.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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