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의 믿음

2020.06.09 08:14

박상형 조회 수:11

글쎄?의 믿음(신29:1~9)


구원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럼 다시 태어났다는 증거는 무엇일까?
다시 태어났기에 전과는 다르게 살아야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살고,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다시 태어났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은 애굽의 압제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그런데 그들이 받은 것은 온전한 구원이 아니었다.


그들이 받은 구원이 온전한 구원이 아니라는 이유는
그들의 삶의 태도와 목적이 바뀌지 않았고
하나님께로부터 아직 받지 못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을 위해 살고 있었고
그들이 아직 받지 못한 것은
깨닫는 마음과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 였다.
(4)그러나 오늘까지 여호와께서는 너희에게 깨닫는 마음이나
볼 수 있는 눈이나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지 않으셨다


구원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깨닫는 마음과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면
내가 받은 구원은 글쎄? 이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바로에게 행하신
모든 것을 두 눈으로 보고도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했고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곳을 보았으며
하나님의 음성에 청종하지도 않았다.


구원은 나 중심에서 하나님중심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것이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이다.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내 의지대로
행하며 살던 과거의 모든 것들이
이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의지로 바뀌어서
살게되는 것을 구원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은 광야를 40년동안 다니면서
옷도 헤어지지 않고 신발도 닳지 않았는데도
배고프다고 징징거리고 불평했다(5)


전체를 보지 못하고 당장 앞에 있는 현실만 보며
그것을 채우기에만 급급했고
그것이 채워지지 않을 때에는 다른 곳을 보며
하나님을 배신했고 우상을 섬겼다.


그들의 구원이 글쎄?라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럼 내 구원은?
맞다 내 구원도 아직이다.
하지만 글쎄?는 아니고, 그렇게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글쎄?가 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될까?


그것은 깨닫는 마음과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받는 것이다.


그것들은 초자연적인 현상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다.
수 많은 이적과 놀라운 기사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그것들을 못 받은 이스라엘의 상태를 보면서도
그들과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은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것이다.


깨닫는 마음과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는
말씀속에 들어있다.
하나님이 말씀에 그것들을 담아놓으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이 내 안으로 옮겨질 때
그것들을 내게 주신다.


아직도 분명히 기적은 존재한다.
하지만 보고 믿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보고 믿는 것보다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더 복되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


깨닫는 마음이나 볼 수 있는 눈이나
들을 수 있는 귀가 없는 글쎄?의 믿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벗어나는 첫 번째 방법이 말씀묵상이다.
(9)이 언약의 말씀들을 지켜 행하라.
그러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잘될 것이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에도 관심은 있지만
나의 최대 관심사는 말씀속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과 보는 눈과 들을 있는 귀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말씀을 묵상한다.


하나님! 오늘도 말씀안에 있는 그거 주세요.
그거로 살게...
(2020. 06. 09.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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