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수고라는 저주

2020.06.07 08:04

박상형 조회 수:17

헛수고라는 저주(신28:36~57)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받게 될 저주가 오늘도 나열되고 있다.

 

 

밭에 씨를 많이 심어도

추수하는 것은 적을 것이라고 하신다(38)

포도나무를 심고 갈더라도 포도주를 마시거나 

수확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도 하신다(39)

 

 

본문에서 말하는 저주의 내용은 헛수고이다.

그것이 헛수고인 것은,

저주는 받게 되지만 그 때가 언제 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 때를 모르기에 

수고는 하지만 결과는 손에 쥘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이 헛수고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헛된 희망을 품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헛된 희망이란,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높은 성벽들에게 소망을 두며 믿고 있는 것이다(52)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높은 성벽이

무너져 내릴 때까지 저주를 내리신다고 하신다.

그것들이 무너져 내릴 때 까지

성을 포위하고 모든 성들을 에워쌀 것이라고 하신다.

 

 

그 성이 무너져내리지 않는 한,

그 성을 소망하며 믿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저주에 둘러쌓여 있을 것이다.

 

 

크기를 크게 하는데 집중하고

사람을 모으기 위해 세우는 계획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높은 성벽에 마음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마음이 무너져내릴 때까지

헛수고라는 저주를 내리시고 거두시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때를 아신다.

헛수고는 때를 모르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높은 성벽을 믿는 것에 대한 

당신의 질투하심이다.

 

 

이런데도 큰 건물을 축복이라고 할 것인가?

이런데도 사람 수에 연연하며 그것을 자랑해야 할까?

 

 

나도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헛수고라고 하는 이유는

20여년간 자비량 평신도 선교사로 살았던

그 삶에 대한 결과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숫자가 제법 모였을 땐 헛수고 같지 않았는데

적은 수가 모이고 그것도 코로나19 때문에 

몇 달간 그 수마저 모일 수 없었으니 더 그렇게 느껴진다. 

 

 

그런데 헛수고처럼 보이는 그 기간 동안

놓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말씀묵상이었다.

 

 

말씀묵상으로 인해

높은 벽에 가 있던 내 마음들은 하나 둘씩 

아래로 내려왔고 지금도 내려오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헛수고가 아니었다.

때를 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더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크기와 숫자에 연연하는 헛수고에

더 이상 마음주지 않으려고 하니 말이다.

 

 

이제는 헛수고 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일에 더 집중하고 싶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더 이상 헛수고로 

낭비할 수는 없으니까...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정말 느려보이긴 하지만

결코 헛수고가 아님을 오늘도 새삼 깨닫게 하신다.

(2020. 06. 07.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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