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부르는 노래

2020.06.20 08:07

박상형 조회 수:2

삶으로 부르는 노래(신33:1~17)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에게

각 지파별로 축복을 해준다.

 

 

그런데 예전 같으면 별일 아니겠지만

지금은 모세가 누굴 축복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모세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가나안에도 못 들어가고

이제 곧 광야에서 죽게 될 사람이니까 말이다.

자신도 못 받은 축복을 남에게 줄 수는 없지 싶다.

 

 

또한 모세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들이 평생 부를 노래를 

가르치라고 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축복이 아닌 저주가 담긴노래였다.

 

 

하나님이 저주를 통해 이스라엘을 가르치시려는 판인데

모세는 축복을 노래한다는 것 또한 이상하다.

 

 

왜 모세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축복의 순서도 뒤죽박죽 섞은 채로

축복을 해주고 있는 것일까?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에 이런 축복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모세가 가나안에 못 들어가는 것이 징계였다면

모세는 축복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징계가 아니기에

하나님이 죽기 전에 모세에게 가나안을 보여주셨고

모세 역시 이것에 반박을 하지 않았다.

 

 

축복과 저주는 같이 다닌다.

인간은 축복만 가지고 살 수 없고

저주만 받으며 살 수도 없다.

 

 

축복만 있으면 금방 교만해 질 것이고

저주만 있다면 살아있을 이유가 없다.

 

 

축복은 저주를 축복하고

저주는 축복을 저주하면서 살아간다.

 

 

평생 불러야 할 노래에 저주가 들어 있었으니 

이제 이들에겐 축복의 노래가 필요하다.

그래야 균형이 맞지 않을까?

 

 

균형을 맞추기 위해 축복을 해 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주속에 축복이 들어있는 것은 알고 있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이 잘 보이는 것처럼

축복속에서 저주는 잘 못 보지만

저주속에서 축복은 잘 보인다.

 

 

그래서 하나님이 저주의 노래를 가르쳐 주셨고

모세는 저주속에서 보이는 축복을 노래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를

보호하시고 사랑하신다(3)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이 축복이고,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이

주님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3)

 

 

나도 저주 보다는 축복을 노래하고 싶다.

저주속에서 축복을 노래하기보다는

말씀속에서 축복을 노래하고 싶다.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나누고 

말씀을 공부하며 말씀을 전하는

그 사랑 노래를 부르고 싶다.

입이 아닌 삶으로 부르는 축복의 노래를...

 

 

요즘은 노래가 아닌 

소음을 들려드리는 것 같아

하나님께 죄송스럽다.

(2020. 06. 20. 토요일)


카페 정보

회원:
3
새 글:
0
등록일:
2016.12.07

로그인

오늘:
6
어제:
3
전체:
69,146

신입 회원 소식

게시글 랭킹

댓글 랭킹

현재 접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