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르기보다 묵상

2020.08.18 08:24

박상형 조회 수:3

알레르기보다 묵상(롬11:11~24)

 

 

1. 원가지 

 

이스라엘은 잘려진 원 가지이다. 

그러나 완전히 잘려나간 것이 아니었다.

개인은 잘려나갔지만 민족은 완전히 잘려나가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민족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2. 접붙혀진 가지 

 

구원받은 이방 그리스도인은 접붙혀진 가지이다.

개인은 구원받았지만 교회전체가 구원받지 않았다.

교회에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기에

교회의 차원에서 구원을 생각하면 안되고 

개인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접붙혀진 가지는 잘려진 원 가지를 보고 자랑해서는 안된다.

접붙혀진 가지는 원 가지의 뿌리에 붙어있는 가지이고

그 뿌리가 접붙혀진 가지에게 진액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3. 시기와 부러움

 

시기는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미워하는 것이고

부러움은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말하는 골육을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

얼마를 구원하려 한다는 말은 시기보다는 부러움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다.

(14)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4. 전도

 

바울사도는 우리이게 전도의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전도는 다른 이에게 부러움을 주는 일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잘 먹고 잘 살며 잘 되어나가는 부러움이 아니다.

그 부러움은 세상에 아주 많이 있다.

 

 

세상이 모르는 세상과는 다른 부러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먼저는 어떻게 저렇게 살까? 라는 의문이 들게 하고

그 의문은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부러움으로 발전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전도를 할 수 있다.

 

 

잘먹고, 잘 살고, 잘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전도가 아니다.

 

 

작아도 행복할 수 있고,

없어도 도울 수 있고,

아파도 미소지울 수 있는 모습을 가진 교회가

전도할 수 있는 교회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교회(말씀의 빛 교회)의 모습이 참 좋다.

 

 

5. 접붙혀진 가지의 자세

 

 

가지가 거룩하고 깨끗한데 뿌리가 썩어있을 수는 없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 내가 구원받을 수 있었다면

누군가의 잘됨으로 인해 받을 수 있는 유익은 더 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지는 뿌리를 존귀히 여겨야 한다.

 

 

나는 접붙혀진 가지이다.

내가 누구보다 낫다고 자긍하는 것은

내가 나를 나무에 붙인 것이라든지 

내가 나무에 스스로 붙어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나무에 붙혀질 자격도

나무에 스스로 붙을 어떤 것도 없다.

그런데 접붙힘을 받았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가져야 할 마음은

자긍심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접붙혀진 가지는 잘려나간 원 가지를 거울 삼아

높은 마음보다는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믿음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20)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내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긍휼하심 안에 있기를

계속 접붙혀진 가지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알레르기 때문에 휴가를 연장했다.

의사선생님 왈 “심한데요?”

 

 

모든 위험중에서 가장 큰 위험은

형태가 정신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생각에 형태를 주고 생각이 조직화 화는 순간

조직이 정신을 질식시키는 문제에 도달하게 된다고 한다.

 

 

다시말해 조직에 신경쓸 때 정신이 몰락된다는 것이다.

 

 

알레르기에게 형태를 주지 말아야 겠다.

알레르기가 내 말씀묵상에 영향을 줄 수는 없다.

다행히 어제보단 알레르기가 살짝 가라앉았다.

(2020. 8. 18.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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