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오기 전에...

2020.09.09 08:06

박상형 조회 수:5

그 날이 오기 전에...(렘30:1~11)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되지 않아도 확실하지만
기록하라는 말은 확실하다는 말이다.


기록하라는 말은 잊어버리지 말라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되게 하시겠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당신의 말을 기록하라고 하신다.

(2)“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네게 말한 모든 말들을 책에 기록하여라.


기록할 말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날이 온다는 것이다.
그 날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구원을 받는 날이다.


그 날은 다시는 주인이 바뀌지 않는 날이며

(8)나 만군의 주가 하는 말이다. 그 날이 오면,
내가 그의 목에서 멍에를 꺾고, 그의 사슬을 끊어서,
이방 사람들이 그를 더 이상 종으로 부리지 못하게 하겠다.


그 날은 다시는 그들의 왕이 바뀌지 않는 날이다.

(9)그러면 그들이 나 주를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섬기며,
내가 그들에게 일으켜 줄 다윗의 자손을 자기들의 왕으로 섬길 것이다."


하지만 그 날을 받기 전에 먼저 받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을 받지 않으면 그 날도 오지 않는다.
십자가를 받지 않으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없는 것처럼...


그들이 그리고 내가 먼저 받아야 할 그것은


1. 공포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먼저 받아야 할 소리는 떨리는 공포의 소리이다.

(5)“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떨리는 소리를 들으니 공포요, 평화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원하는 것은 평화의 소리였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공포의 소리였다.
이스라엘은 돌아오기 이전에 공포의 소리를 들었다.


바벨론에게서 공포의 소리를 들었고
선지자에게서 공포의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에 반항하고 대항하며 무시한 사람들은 죽었지만
그 소리를 하나님의 목소리로 들은 사람들은 살아서 돌아왔다.


공포의 떨리는 소리 속에 하나님이 음성이 있었다.


2. 고통의 기간을 지나야 한다.

그 날 이전에 지나야 할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다.
그 고통은 넘어졌을 때 다치는 찰과상 정도가 아니다.
그 고통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남자가 해산 중인 여자처럼
손을 허리에 대고 두려워하는 고통이다.

(6)남자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물어보라.
그런데 왜 해산 중인 여인처럼 모든 남자들이 손을 허리에 대고 있고
모든 얼굴이 창백해져 있는 것을 내가 보는가?


내가 왜 고통을 당해야 하면서 항변하고 밖으로 뛰쳐나간 사람은
고통속에 죽어갔지만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고 인정한 사람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


고통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3. 왜 이런 것들이 있어야 할까?


그 날을 맞이하려면 그 날에 하나님을 만나려면
반드시 이런 날들이 있어야 한다.
공포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고통의 날들을 지나야 한다.

(7)아, 그날이 크므로 그와 같은 날이 없을 것이다.
그날이 야곱의 고난의 때나 그가 그 고난의 때에 구원받을 것이다.’


왜 이런 것들이 있어야 할까? 라고 묻기 보다는
이런 것들이 없어도 괜찮을까? 라고 물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나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이 말은 맞고 할래? 그냥 할래? 라는 말과 다르다.
그 말은 우리 안에 있는 죄를 너무 가볍게 보는 말이다.


내가 나를 아는 한
나는 결코 그런 날들 없이 그냥 주를 만날 수 없다.


그 날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여전히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11)여호와의 말이다. ‘내가 너와 함께해 너를 구원할 것이다.
내가 너를 흩었던 모든 민족들을 완전히 멸망시킬지라도
너는 내가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를 정의로 훈계하고 네가 결코 처벌을 면하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4. 늘 옆에 있고 늘 들어야 한다.

공포의 기간이 아니라고 그 소리를 못 들어서는 안된다.
고통의 기간이 지났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나는 늘 그 소리를 들어야 하고 늘 고통속에 있어야 한다.


내가 공포의 소리를 듣는 방법은 말씀묵상이다.
그리고 말씀과 함께 고통의 기간을 걷는다.


그래야 망하지 않고
그래야 하나님과 늘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하나님 옆에 있고 싶다.
(2020. 09. 09.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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