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할 수 없는 일

2020.11.16 07:46

박상형 조회 수:20

아무도 할 수 없는 일(단2:1~13)


아무나 오를 수 없는 자리에 오른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전국의 마술사와 주술가와 점쟁이와 점성가들을 불러들여서는
자신이 무슨 꿈을 꾸었는지 그리고 그 꿈은 어떤 뜻인지를 묻는
꿈같은 명령을 내렸다.

(5)그러자 왕이 점성가들에게 말하였다. "나의 명령은 확고하다.
너희가 그 꿈의 내용과 해몽을 나에게 말해 주지 못하면,
너희의 몸은 토막이 날 것이며, 너희의 집은 쓰레기 더미가 될 것이다.


아무나 오를 수 없는 자리에 오르다 보니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을 알고 싶어졌나 보다


지혜로운 포로들을 선발하여 교육시켜 등용시키는 등
약간은 현명해 보이는 것 같았던 느부갓네살왕이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이러석은 명령을 내린 것일까?

1. 세상은 말도 안되는 일의 연속이다.


느부갓네살왕은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꿈의 제목과 그 내용을
말하라는 말도 안되는 명령을 내린다.


느부갓네살왕의 명령이 좀 심해 보이긴 하지만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어디 이 한 사람 뿐이었을까?


지금 텔레비젼만 켜면 뉴스에서 말도 안되는 일이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데?
느부갓네살이 의외의 행동을 한것이 아니라 그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2. 최고가 최고로 위험하다

최고는 자신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
자신의 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느부갓네살의 허무맹랑한 명령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세상에서 최고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벌일 가능성이 최고로 높다.
그는 세상에서 최고였지만 최고로 위험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최고가 된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지만
마음이 답답해 질 정도의 이상한 꿈을 꾸게 되고 잠도 편히 자지 못한다.

(1)느부갓네살은 왕위에 오른 지 이 년이 되는 해에,
꿈을 꾸고서, 마음이 답답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3. 세상에 최고는 없다.

느부갓네살은 꿈을 꾸는데 최고 였고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자신이 꾼 꿈을 이루었다.
그리고 바벨론의 술사들은 꿈으로 먹고사는
꿈 해몽엔 최고인 사람들이었다.

(4)점성가들이 아람 말로 왕에게 아뢰었다. "임금님의 만수무강을 빕니다.
그 꿈을 종들에게말씀하여 주시면, 해몽하여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꿈의 내용을 잃어버렸고
바벨론의 술사들은 꿈의 내용과 해몽을 할사람이 세상엔 없다고 고백하였다.

(10)점성가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임금님께서 아시고자 하시는 그 일을
임금님께 알려 드릴 수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일찍이 그 어떤 위대한 왕이나 통치자도 마술사나 주술가나 점성가들에게,
이와 같은 일을 물어 본 적이 없습니다.


4. 최고 인듯, 최고 아닌, 최고 같은 너

느부갓네살은 최고인 것 같았는데 한갓 꿈 때문에 잠을 못 잤다.
점성가들은 꿈에 관한 한 최고인 것같았는데
그 최고의 지위를 포기하고 사람과 살고 있지 않은 다른 신에게
그 공을 넘겼다.

(11)임금님께서 물으신 것은 너무 어려워서, 육체를 가진 사람과 함께 살지 않는
신들이라면 몰라도, 아무도 그 일을 임금님께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이들 모두는 최고인 것 같았는데 최고가 아니였다.
그리고 자신들 위에 최고가 있음을 스스로 자백하고 있었다.


5. 최고가 아닌 최선

최고는 가장 높은 것이지만
최선은 가장 좋은 것이다.


최고와 최선은 같은 집안 식구처럼 보이지만 서로 적이다.
최고가 되면 최선이 보이지 않고
최선을 찾으면 최고가 가까이 오지 않는다.


믿음은 최고를 찾는 일이 아니라 최선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믿음에 최고를 붙이는 순간 그 믿음은 타락한 것이다.
믿음에 최고가 있다면 십자가의 죽음인데
최고가 그것을 받아들일리가 없다.


최고의 교회, 최고의 목사, 최고의 새벽기도, 최고의 선교단체는
이미 십자가에서 벗어난 예수님과 관계없는 곳 들이다.


6. 나의 최선

내가 최선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최선이 나를 받아들이신 것이다.
내가 최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이신 말씀이 나를 당신의 길로 가게 하신다.


지금 나에게 최선은 말씀이다.
오늘 나에게 최선은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다.
내일 나에게 최선은 내일도 말씀과 함께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말씀을 붙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말씀은 말씀을 붙잡을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내 안에 말씀을 넣는다.
말씀이 말씀을 붙잡아 주시기를 소망하면서


말씀만이
최고로 고정되어 있고, 최고만이 인정받는 그런 세상에서
최선을 볼 수 있게 하시니 말이다.


주님, 
최선을 놓치지 않는 최고의 하루가 되게 하소서.
그리고 나 만이 아닌 말씀을 가진 아무나에게도
이 날을 허락해 주소서
(2020. 11. 16.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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