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덮힌 용서

2021.02.28 08:18

박상형 조회 수:10

먼지 덮힌 용서(18:10~20)

 

 

용서란 무엇일까?

 

 

아주 오래된 마음이다.

그러나 그렇게 오랫동안 만나봤고 지켜보았으며

담아보려고 했음에도

나는 여전히 용서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왜 일까?

그것은 용서 위에 덮혀 있는 먼지 때문이 아닐까?

오래는 되었지만 제대로 거들떠보지 않은 책 위에 덮힌 먼지...

 

 

그러므로 용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먼지를 치워야 한다.

용서 위에 있는, 용서가 아니지만 용서로 보이는 것들을 치우면

진정한 용서가 보이지 않을까?

 

 

1. 용서는 숫자가 아니다

 

베드로가 일곱 번이란 용서의 숫자를 말한다.

(21)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베드로는 용서가 숫자로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일곱 번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주님이 대답하신 용서의 수는 일곱 번 곱하기 일흔 번 이었다.

(22)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는 이 숫자는 용서의 수가 아니다.

예수님은 용서는 숫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2. 용서는 양이 아니다.

 

주인에게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신에게 일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탕감해주지 못했다.

 

(28)그런데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밖에 안 되는 빚을 진

동료를 만나자 달려들어 멱살을 잡으며 '내 빚을 갚아라.' 하고 호통을 쳤다.

 

 

일만 달란트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양이다.

그런 엄청난 양의 금액을 탕감 받고도

천 만원 정도를 탕감해주지 못한 것이다.

 

 

용서는 양으로 되는 것도 아니라고 하신다.

 

 

3. 용서는 용서로

 

많은 돈을 탕감 받은 사람은 적은 돈을 탕감해주지 않았다.

이 사람은 많은 것을 용서받고도 적은 것을 용서하지 못했다.

 

 

용서는 얼마나 용서 받았는가?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용서할 수 있는가? 로 되는 것이었다.

 

 

용서받았다면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용서할 수 없다면 용서받은 것이 아니다.

용서받은 증거는 용서하는 것으로 증명이 된다.

 

 

나는 용서받은 사람일까?

나는 용서하고 있는 사람일까?

 

 

작은 것도 용서 못하는 먼지 덮힌 내가 아니었으면

정말 좋겠다.

용서하지 못한 지난 일들이 떠오른다.

아직도 먼지는 많이 쌓여있지만

오늘도 말씀이 한 먼지 떨어주신다.

 

 

나는 용서 도로 옆에 산다.

용인서 서울 가는...

(2021. 02. 27.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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