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2021.04.24 07:15

박상형 조회 수:5

거울아~ 거울아~(9:1~12)

 

 

1. 바본가?

 

바로는 바볼까?

하나님이 손을 들어 이집트 사람의 집짐승은 모두 죽이고

이스라엘집의 짐승은 하나도 안 죽이셨다.

바로도 그것을 확인했지만 그는 여전히 고집을 부리고 있으니 말이다.

 

(6)이튿날 주님께서 이 일을 하시니, 이집트 사람의 집짐승은 모두 죽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집짐승은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7)바로는 사람을 보내서, 이스라엘 사람의 집짐승이 한 마리도

죽지 않은 것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바로는 여전히 고집을 부리고, 그 백성을 보내지 않았다.

 

 

바로는 정말 바본가?

모든 이집트 사람의 몸에 악성종기가 났으며

자신에게도 분명 악성종기가 생겼을 텐데도 고집을 안 꺾고 있으니 말이다.

 

(10)그래서 그들은 화덕의 그을음을 모아 가지고 가서, 바로 앞에 섰다.

모세가 그것을 공중에 뿌리니, 그것이 사람과 짐승에게 붙어서, 악성 종기를 일으켰다.

 

 

이쯤 되면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는 회개하며

이스라엘을 보내주는 것이 상식인데...

바보 아니면 결코 이렇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2. 그럼 천잰가?

 

혹시 바로가 이러한 상황을 직접 보고 겪고도 마음을 돌리지 않는 것은

사람의 마음과는 확실히 다른 하나님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악랄한 일에 비해

하나님이 이집트에게 한 일의 강도가 아직까지는 현저히 약하다는 것과

 

 

하나님은 아무리 적이라도 한 번에 망하게 하시는 자신과는 다른

악랄한 분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재앙을 내릴 때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구분하시는 것을 보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파악하고는

그 사랑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묵상을 하고,

한 번에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엿보고 있는 것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다.

 

 

3. 바로는 거울이다.

 

바로는 바보도 아니고 천재도 아니다.

바로는 세상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도 무시하는 전형적인 모습 말이다.

 

 

바로는 세상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도 알면서

세상을 더 사랑하며 붙잡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바로를 통해

더 많은 고통을 겪고 하나님을 인정할래?

아니면 여기서부터 시작할래? 라는 질문을 주신다.

 

 

바로는 내가 믿음의 방향을 바르게 설정할 수 있는 나침판이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면서도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내 마음의 모습을 비쳐볼 수 있는 거울이다.

 

 

거울아~ 거울아~

나와 바로 중에 누가 더 고집이 세니?

누가 세상을 더 많이 의지하고 있니?

하나님을 향한 네 마음 그거 진짜니?

 

 

오늘은 말씀으로 내 마음을 구석구석 비추고 들여다봐야겠다.

어쩌면 대 청소를 해야 할지도...

(2021. 04. 24. 토요일)


카페 정보

회원:
3
새 글:
0
등록일:
2016.12.07

로그인

오늘:
2
어제:
5
전체:
69,171

신입 회원 소식

게시글 랭킹

댓글 랭킹

현재 접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