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단기선교

김진호

2010년 7월 5일~7월 9일



첫째날(7/5)


단기선교 당일이다. 집결지인 해성교회에 오전9시에  도착하여 아직 미비 된 짐들을 챙겼다.

태권무 팀장인 정훈형제에게 태권도복이 부족해서 아침에 수소문중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순적하게 진행되길 기도했다. 결국 무언극 때 아가씨복장으로 챙겼던 하얀 바지가 효자노릇을 했다. 어제 밤에 아내가 짐이 많으니 하얀바지를 빼라고 했지만, 왠지 가지고 가고 싶었다. 정훈형제가 좋아한다. 태권무 팀장으로서 자세 나오지 않는 남자들 연습시키기 위해 애를 많이 썼는데, 태권도복까지 빌리려다가 마음 고생하는 것을 보고. 태권도복은 개인별로 하나씩 구입해도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매들이 성도님들이 후원해준 옷가지들을 보기 좋게 하나씩 짐 가방에 넣었다. 화물칸에 부칠 가방에는 눈에 잘 띄도록 색깔 있는 색종이를 붙였다. 강보람 자매 엄마가 딸 출국을 앞두고 교회에 배웅 오셨다. 보람자매 중딩(중학교) 때 뵙고 오래간만에 다시 뵈니 반가 왔다. 얼굴이 아직도 고우시다. 특별한 은혜가 있으신가 보다. 담임목사님의 축복기도, 다니엘 기도팀들이 기도회를 마치고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신다. 감사합니다... 어떤 집사님은 집에서 부침개 등 요깃거리를 해 오셔서 단기 팀들을 먹여주셨다. 음식 솜씨가 참 좋으시다. 이윽고 선교위원회에서 단기 선교 팀 점심을 제공해 주셨다. 잘 먹었습니다..... 해성교회 청년회에서 단기 선교 팀을 위해 중보기도 할 것을 문자로 격려해 주었다.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12시30분쯤 단기 선교 팀은 교회 봉고 2대로 나누어 탔다. 관리집사님과 문정윤전도사님이 인천공항까지 우리들을 픽업하시기 위해 오셨다. 우리가 탄 봉고차에는 짐을 싣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청년들이 함께 있었다. 인천공항까지 가는 길에 “김진호 토크 쇼”를 진행하였다. 먼저 젊은 오빠 김영안 집사님부터 인도네시아로 떠나는 지금의 소감과 부르고 싶은 찬양을 청해 들었는데, 대박이다.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표현하면서 즐거운 이야기와 찬양을 계속해서 불렀다. 금방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화물칸에 보낸 짐 중에서 반입금지 물품이 있었다. 홈키파 2개짜리. 여행사 직원이 하나씩 따로 넣었으면 괜챦았다고 말해준다. 여행사 직원에게 홈키파2개짜리를 선물로 주고 출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해당 라인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LG TELECOM에서 로밍을 하였다. 로밍하는 사이 우리 팀이 벌써 시야에서 사라졌다. 급하게 쫓아가는데 강도사님이 핸폰으로 연락을 주셨고, 다시 합류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아시아나 항공 OZ751로 탑승했다....


김영안집사님이 내 바로 옆자리, 그리고 김만길 전도사님, 그다음 창규가 앉았다. 박정연집사님은 비행기 창가 쪽에 앉아 창밖을 구경하실 요량으로 준비하는 듯 보였다. Q.T책을 꺼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히3:1,4)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단기선교가 되게 하소서. God is the builder of everything- 피곤했는지 대부분의 지체들이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옆자리에 있는 김영안집사님을 깨웠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언어 암기 점검 짝이 되어 생존언어를 반복해서 복습했다.

5월 중순에 손창남 선교사님께 인도네시아 언어를 배운 뒤, 현지에서 인도네시아 사전이 필요할 것 같아 영풍문고에 갔었다. 그런데 왕초보가 쉽게 배우는 열공 인도네시아 첫걸음  회화 책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책을 구입해서 틈틈이 필요할 것 같은 문장이나 단어 위주로 외우고, 필요한 것은 노트에 정리했다. 전에 몽골과 터키단기선교를 다녀오면서 언어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인도네시아 현지어를 틈틈이 익혔다. 물론, 부족하기 짝이 없겠지만, 선교현장에서 주께서 특별하게 역사해주시길 간구했다.


5시간 30분이 금방 지나갔다. 우리는 싱가폴 창이공항에 오후 9시25분에 도착하여 마중 나온 김규식선교사님과 현지사역자 세분과 함께 한인교회 선교관으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하여 조심스럽게 짐을 옮기고 한인교회 선교관에서 김규식선교사님 가족과 현지사역자들과 인사하는 시간을 가지며 앞으로 진행될 일정을 듣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잠자리를 준비하면서 지수자매가 현지인 여자 분들에게 찾아가 담소를 나누는 것이 눈에 띄였다. 지수는 사교적이고 성격이 좋아서 낯선 사람들과 빨리 친해지는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지수가 선교사가 되면 어떻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우리는 가볍게 만디(샤워)하고 자정 넘어 잠을 청했다.


둘째날(7/6)


이튿날 6시쯤에 잠에서 깼다. 어제 밤에 김규식선교사님께서 “기도 많이 하고 왔지요?”하신 말씀이 찔림으로 다가왔다. 조용히 앉아서 묵상으로 기도했다. “주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하리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7시 쯤 되어 형제자매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찬양을 부르고 싶었다. 주의 이름을 높여 드리고 싶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키타를 치면서 주님을 높여 드리는 찬양을 올려드렸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이름 높여드립니다. 주의 나라 찬양 속에 임하시니. 능력에 주께 찬송하네. 전능하신 하나님 찬양 언제나 동일하신 주, 전능하신 하나님 찬양 영원히 다스리네.” 찬양하는 동안에 우리 팀들이 전부 동그랗게 앉았다. 영감있는 찬양을 인도하시는 김만길전도사님의 키타반주에 맞춰 우리는 함께 간절한 찬양을 드렸다, 이윽고 전체 Q.T 본문인 로마서3장 21~31절을 합독한 후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였다.


“예수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효력을 미치는 복음의 능력이 인도네시아 지역과 사람들에게도 미쳐야 되지 않겠느냐는 도전을 주셨다.


싱가폴 Harbor Front에서 아침을 간단히 먹었다. 현지인사역자 중 목사님사모님이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처음으로 현지인사역자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였다. 김영안집사님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대화를 한 후 나의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다. “Ini istri saya(this is my wife), Ini laki-laki saya(this is my son), Ini perempuan saya(this is my daughter)" wife가 예쁘다고 한다. 이 말을 받아 김영안집사님이 그 사모님께 "beautiful"이라고 하자 부끄러워 하신다. 자연스럽게 가족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 사모님의 남편과 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잠시 후 우리들은 싱가폴에서 인도네시아 바탐섬으로 가는 유람선(?)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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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후미에 따라가다가 유람선에 오르니 우리팀들이 안보였다. 앞쪽으로 가 보니, 박정연집사님과 솔희자매가 나를 부른다. 다른팀들은 배밑으로 갔다고 했다. 바탐 섬으로 가는 바다가 참 예쁘다. 주위를 둘러보니, 십여명의 인도네시아인이 삼삼오오 무엇인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바로 뒤쪽에 모녀로 보이는 인도네시아 사람 3명이 있었다. “selamat pagi! kami dari korea(안녕하세요, 우리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가족관계를 물어보면서 우리는 서로 인사했다. 딸들은 대학생이였고, 영어를 사용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한국에서 가져온 ”스티커“를 꺼내 세분에게 한 장씩 주었다. 하트 스티커, 크리스마스트리 스티커, 동물 스티커...기뻐들 했다.

이 스티커는 한국에서 짐을 챙길 때, 인도네시아에 가면 “선물용”으로 요긴하게 쓰일 것 같아 딸 주희에게 사정 사정해서 어렵사리 20장 얻어왔었다. 가족사진도 보여줬다. 딸이 예쁘다고 한다. 분위기가 금방 화기애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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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함께 찍었다(낯선 사람과 친숙해지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함께 사진 촬영 하는 것). 그리고 사진을 보내주기 위해 이메일 등 연락처를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언니가 적어줬다. 잠시 후에 무슬림인지 물어보았다. 모든 가족이 catholic 신자라고 말했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예수님를 아는지 성경을 읽고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성경도 읽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내 마음가운데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 Q.T 말씀처럼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전해져야 함을 순간적으로 느꼈다. 나는 “Permisi(실례합니다)” 하면서 뒤쪽에 있는 인도네시아 젊은 자매들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바로 영어 사영리를 꺼내 “Have You Heard of The Four Spiritual Laws?(사영리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도입 문구를 읽어주고 복음제시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주로 언니와 대화를 했는데 이번에는 동생이 호감을 표시했다. 두 자매에게 영어 사영리를 보여주면서 Pen으로 가리키며 확신을 가지고 읽어 나갔다. 한참 읽다가 언니를 쳐다보니, 눈을 감고 있었다 ”Are you tired?" 언니가 씨익 웃는다. 그런데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말을 아꼈던 동생자매가 이번에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영어 사영리에 대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어느새 동생자매가 영어 사영리를 함께 읽고 있는것이다. 주께서 예비한 영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Let's pray with me. close your eyes, follow me... 함께 영접기도를 하고 구원의 확신, 기차그림 등 양육부분까지 사영리 소책자를 끝까지 읽고 나자 유람선이 목적지에 도달했다. 타이밍이 예술이다. 할렐루야! 배에서 내리면서 복음 제시한 자매의 연락처를 알고 싶어 e-mail를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복음 안에서 친밀함을 주셨다. 다시 한번 자매와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selamat jalan(잘 가세요)" 배에서 내리면서 박정연집사님이 너무 멋졌다고 격려해 주셨다.


바탐섬에 도착하여 숙소로 가는 차안에서 김규식선교사께 유람선에서 있었던 일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catholic 신자임을 확인하고 복음 전한 것에 대해 선교사님도 적극적으로 동의하셨다. 전에 터키 단기선교 때에는 복음 전하는 것을 선교사님들이 강력하게 금하셨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전하고 싶은 마음을 접어야만 했다. 그래서 무슬림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도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또 다른 경험을 하게 하신 것이다. 준비한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감사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현지인 사역자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들은 짐을 정리하고 오후에 진행될 주일학교 캠프 준비물을 챙겼다. 그리고 곧장 점심식사를 위해 현지인 사역자들과 함께 인도네시아 식당에 갔다. 나는 한국 단기팀들과 현지인사역자들간에 팀웍에 도움이 될것 같아 현지사역자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였다. 전도사님이라고 하는 현지인 한 형제와 식당으로 오는 차안에서부터 찬양을 함께 리드하면서 우리들은 금새 친해졌다. 인도네시아찬양, 영어찬양, 한국어찬양을 매들리로 신나게 부르는 사이에 우리들은 어느새 한 팀이 되어가고 있었다. “달람 예수 끼타 버리소다라(예수님안에 우리 형제자매)”

인도네시아 전도사형제가 식당에서 한국말로 “배불러, 배불러” 했다. 내가 “바사바시(배고프면서 말로는 배부르다고 반대로 말하는 것 : 체면문화)라고 했더니, 약간 놀라며 재밌어한다. 한국에서 인도네시아 언어특강을 해주셨던 손창남 선교사님으로부터 ”바사바시“의미를 배웠던터라, 인도네시아 문화용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깜풀베쩩교회 주일학교 캠프1

차량으로 1시간 남짓 이동 후 우리들은 주일학교 캠프 장소인 깜풀베쩩 교회에 도착했다.

벌써부터 많은 아이들이 예배당안과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현지인 사역자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풍선장식으로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준비가 어느 정도 다 된 후, 드디어 3시 예배를 알리는 찬양이 시작되었다. 목소리가 쩌랑쩌랑한 현지인 여선생님의 카리스마와 찬양인도가 그야말로 파워풀했다. 완전 대박이다. 또한 현지인 주일학생으로 구성된 찬양팀의 율동과 표정이 참 인상 깊었다. 특별히 찬양팀 중앙에서 하얀이를 드러내며 항상 활짝 웃으며 찬양하는 한 친구가 눈에 띄었다. 그 친구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옆친구와 뭐라고 뭐라고 애기하며 자연스럽게 율동과 찬양을 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뻤다. 인도네시아 찬양이였지만, 처음 따라하는 단기선교팀이 푹 빠질 정도로 찬양과 율동이 매력적이였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신이나고 기분이 좋아진다. 참 알 수 없는 영감과 흥이 있었다. 가난하지만, 순수한 열정을 축복하시는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이 아이들을 통해 먼 훗날 인도네시아 땅에 더 큰 부흥이 오리라는 예감이 든다. “축복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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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선강도사님의 확신있는 메시지와 김규식선교사님의 통역이 리어설을 해본것처럼 척척 잘 맞았다.

예배를 드린 후, 행사팀장인 강보람자매의 리드로 야심차게 준비한 게임과 만들기를 하면서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이렇게 2부 행사에 쏙 빠진적이 얼마만인가? 우리 조 고학년 여자친구들이 “디 마나 꼬레아?(한국이 어디에 있어요?)”하며 내게 물어와서 마침 내 다이어리에 세계지도가 있어 알려줄 수 있었다.

우리 조 아이들 이름 외우기(MARIA, ELIANES, DAME, SONANG, SONIA, YOGA, IMAN, RUT, YUNISA ; 현지인선생님) 플레이콘, 풍선게임, 간식, 가면만들기, 페이스페인팅, 폴라로이드 사진찍기.. 즐겁다. 축제다... 아이들을 배웅하고 마지막에 현지인사역자들과 우리팀들이 잠깐 기도하는 시간을 갖었는데, 선교사님이 마무리 기도를 내게 부탁하셔서 큰소리로 기도하고 마지막에 용기를 내어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in jesus name ! Amen! 이라고 했다. 어 뭔가 2% 부족한것 같은데... (I pray)가 생략됐네. 할수없다 쩝쩝..


저녁식사 후 간단히 샤워하고, 기도하며 기대했던 현지인 가정방문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팀은 4개조로 나누어 전원이 현지인 가정방문을 참여하도록 주께서 환경을 열어주셨다.

한국에서 인도네시아 단기선교를 준비하면서 이번에는 현지인 방문계획을 선교일정에 포함시켜주시길 김규식선교사님께 요청하고 기도하였었는데, 싱가폴에 도착한 첫째 날에도 선교사님은 현지사정에 의해 진행여부를 결정하자는 신중한 입장이셨다. 그러나 나는 틈틈이 선교사님께 현지인 가정방문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이미 마음속에 어떤 확신이 있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주께서 오늘 저녁 현지인 가정방문이라는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해주셨다. 할렐루야! 한팀 한팀 차에서 내려 현지인 집에 들어갔다. 두 집이 남았는데, 선교사님이 한 집이 경제적으로, 신앙적으로 어렵고 부담이 되는 집이라 어떻게 하실지 망설이신것 같았다. 그래서 그 집에 우리가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현지인 가정에 방문한 우리팀은 강보람, 이솔희, 임정훈, 김진호였다. 현지인은 30대 부부인 ALVOND, SUSI, 그리고 3살짜리 아들 CHIKO네 가정이였다. 처음에는 CHIKO 아빠가 낯선 외국인이 가정을 방문해 다소 낯설었는지, 자꾸 왔다갔다 했다. CHIKO 엄마 여동생이란분이 은행에 근무하는데 오늘 언니네집에 외국인이 방문하게 되어 가이드 역할을 하러 일부러 왔다. 물론 처음에는 그 사실을 잘 알지못해, 오해를 했다. 혹 CHIKO 아빠가 wife가 두 명인가(?) 입장 곤란할까봐, 물어볼수도 없었다. 그런데, 여동생 가이드가 일본에서 살았었는지, 일본식 영어 발음이 도통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청년들이 여동생 가이드와 SUSI와 대화하는 동안 나는 복음제시 기회를 가능하면 빨리 확보하기 위해 chiko 아빠와 대화를 시도하였다.  chiko 아빠인 ALVOND는 햇볕에 많이 탄 얼굴이였고 인상에서 느껴지는 것은 다소 뭔가에 찌든 모습이였다. 입에서 담배냄새도 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준비한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분위기를 만들어 나갔다. 이윽고, 영어사영리를 또박또박 읽어 나갔다. 2원리를 읽어나갈 때, SIN(죄)이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ALVOND가 처제에게 뭐라고 뭐라고 물어본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정훈형제가 인도네시아 말로 “DOSA"라고 말해줬다. 맞다. 죄를 인도네시아 말로 ”도사“라고 해. 그때서야 ALVOND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구원의 확신부분에서는 영생(eternal life)의 의미를 잘 모른 것 같아 ”달람 예수“ 찬양 후미 가사인 ”지금부터 영원까지“의 스까랑 단 슬라마냐를 말하자 이해하는것 같았다. 범사에 지혜를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영접기도를 하고 사영리 소책자를 끝까지 다 읽은 후에 함께 기도하자고 제의했을 때, ALVOND가 혼자서 진지하게 3분정도 기도했다. 무슨 내용인지 잘은 모르지만, 예수라는 단어와 감사하다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였다. 이윽고, 자매들은 SUSI의 안내로 잠자리를 준비하러 갔다. 정훈형제가 ALVOND에게 축구 좋아하냐고 묻자,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베드민턴과 축구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스페인 :포르투갈“ 축구경기를 시청하자고 제의하였다. 나는 피곤해서 먼저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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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날(7/7)

아침 6시 반쯤에 일어났다. 어제 ALVOND에게 복음을 전할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CHICO가정을 위해 기도했다. 얼마 있다가 정훈형제가 일어나서 기도한다. 정훈형제는 다른 사람들이 헤라클레스 라고 별명을 붙여주었다. 도무지 지칠줄 모르는 그 힘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다. 무거운 짐을 도맡아 메고, 캠코더로 동영상을 찍는 정훈이의 모습 속에서 강한 주님의 모습이 느껴진다. 정훈이는 이번 단기선교 때 재정 때문에 쉽지 않았는데, 선교 출발 마지막날에 재정을 다 채워주셨다고 주님께 감사했다. “축구 경기 어떻게 됐어?” 정훈형제 말이 어제 저녁 조금 TV시청하다가 잠이 들었다고 했다. 이윽고 ALVOND가 일어나서 스페인이 포르투갈을 1:0으로 이겼다고 말해줫다. 그리고 TV를 작동시겼다. 인도네시아 방송에서 축구경기에 대해 한참 중계하고 있었다. 축구를 인도네시아 말로 sepak bola 라고 가르쳐 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ALVOND의 wife인 susi가 아침인사를 하며, 먹을 것을 갖다 주었다. 유부초밥처럼 생긴 작은 밥들과 과자들이였다. 뜨리마까시(감사합니다.) 에낙 스칼리(매우 맛있다).... 하지만, 이른 아침이라 몇 개만 먹었다. 설마 이것이 아침식사는 아니겠지...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아침식사였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대체로 빨리 자고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는 것 같았다.


자매들이 Q.T를 밖에서 진행하길 원해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말하고 우리는 CHICO네 집에서 나왔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마침 평상처럼 생긴 장소가 있어 그곳으로 향했다. 인도네시아 주민으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와 아이가 그곳에 있었다.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이곳에 앉아도 되는지 물었다. 괜찮다는 말에 감사하다고 말씀드린 후 우리는 평상에 올라 앉았다. 짧게 기도한 후, 우리는 Q.T 본문말씀을 돌아가며 읽은 후, 말씀을 묵상하였다. 잠시 후, 묵상한 내용을 우리는 풍성하게 share하였다. 개인적으로 그 날, 성령님이 인도하셔서 타락할 뻔 했던 나를 주님이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청년들에게 간증하게 하셨다. 이 간증을 할 때는 늘 눈물을 주신다. 나중에 한국에서 솔희자매가 선교간증을 하면서 솔희자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많이 방황했었는데, 주님의 은혜로 회복되었고, 그래서 그 큰 사랑을 갚을 길 없어 20대에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아버지께 헌신하겠다고 결단했다는 그 고백이 오버랩 되면서 간증을 듣는 그때에 다시 눈물이 나는 것은 동일한 은혜와 사랑을 동일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받았기 때문이리라.. 솔희자매! 우리 아버지, 너무 좋다 그치?


Q.T 후 우리는 CHICO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햅반 3개를 SUSI에게 부탁해 뜨거운 물에 데웠다. 시장한 우리는 김, 불고기고추장, 멸치 등으로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CHICO와 놀러 온 여자아이에게 스티커 선물을 주고 우리는 CHICO 가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다. 김규식선교사님이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작별인사를 하면서 SUSI에게 선물이라고 말하며, 3만 루삐아(인도네시아 화폐가치 30만원)를 건넸다. 넉넉지 않는 살림에 외국인들에게 숙소와 음식을 제공한 것에 대한 우리의 작은 답례였다. 다음에 다시 보자는 말과 함께 우리는 아쉬운 인사를 하였다. ALVOND 가족은 참 순수했다. 특히 SUSI가 언어소통의 어려움속에서도

뭔가 표현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조금은 영적인 답답함으로 남는다. 바벨탑이 가져다 준 “언어 혼돈”이 사라진 날, 우리는 모든 민족들과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는 자유 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숙소에 돌아 온 우리 팀은 오전에 블라깡 빠당 교회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후에 주일학교 캠프 준비물을 챙겨 서둘러 이동차량으로 올랐다. 달리는 차안에서 다시 토크 쇼는 계속 되었고 이번에는 해성처럼 등장한 오보람 사회자에게 주도권이 넘어갔다. 보람이의 위트와 구성진 진행으로 우리들은 계속 웃을 수 있었다. 오보람! 넌 대단해!


블라깡 빠당 교회 방문시 배안에서 어떤 현지인 남자분이 동승해 인사를 했는데 알고보니 그 교회의 핵심 일꾼이였다. 우리는 교회까지 약15분 거리를 베작이라는 자전거를 타고 갔는데 재있었다. 물론 자전거를 운전하시는 분들이 나이드신 할아버지들이라 약간 민망했지만, 이렇게라도 돈벌이를 하시는 것이 건강에도 도움이 되실 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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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수중(水中)에 세운 여러 집들 속에 함께 있었다. 교회에 도착하여 선교사님으로부터 교회 분들과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지인 형제의 인도로 찬양을 드렸다. 이윽고 60대쯤으로 보이는 이 교회의 여자 리더분이 이곳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처음에는 교회에 도둑도 들고 교회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았지만, 점점 교회에 대한 관심과 신자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다. 그 분의 스피치는 짧지만 설득력이 있었다. 8명 정도의 현지 어린이들이 어른 몇 명과 함께 있었다. 나는 그 친구들에게 다가가서 스티커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선교사님이 우리들을 대표해서 교회 리더에게 헌금을 전달하셨다. 나는 그 여자 리더분에게 당신의 스피치가 참 좋았다고 격려하는 의미로 말씀해 드렸다. 교회를 둘러보고 기념촬영을 하다가 민수가 나무가 무너지는 바람에 물에 빠질뻔한 해프닝이 있었다. 약한 나무다리가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 과부하가 되었던것이다. 우리는 작별인사를 하고 조심조심 나무다리를 건너 다시 베작을 타고 배 타는 곳으로 갔다. 배 타는 곳에서 블라깡 빠당 교회의 현지인 형제가 It's for you! 하면서 람부탄 한 봉지를 건네 주었다. 주안에서 형제애가 느껴졌다. 형제와 hug하고 우리는 주일학교 캠프를 위해 배를 탔다. 봉고 차안에서 현지인 형제가 준 람부탄을 김영안집사님과 함께 정말 맛있게 실껏 먹었다. 고맙게도 함께 탄 청년들이 별로 먹지 않았다. ㅋㅋ 인도네시아 과일중에서 람부탄이 제일 맛있는것 같다. 두리안은 처음에는 많이 역겨운데 몸에 좋고 자꾸 먹으면 먹을 만하다. 현지인사역자들이 내가 두리안 먹을 때 유심히 보더니 내가 적극적으로 먹고 또 달라고 해서 몇 개를 더 먹으니까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다. 확실히 난 먹성과 비위를 겸비한것 같다.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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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FOOD에서 현지인사역자들과 함께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선교사님이 수고한 모든 일꾼들을 위해 멋진 곳으로 우리들을 안내하셨다. 선교사님 가족들도 오셨다. 선교사님 자녀들이 초창기에 현지에 적응을 못해 학교에서 어려움이 있었고 장남은 손가락을 물어 뜯는 정서불안 증상 등으로 힘든 과정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은 자녀들이 예쁘게 잘 성장하고 있었다. 선교사님 사모님도 현지에서 유치원 운영 등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믿음의 동량들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고 계신 것으로 들었다. 해성교회 담임목사님 내외분들과 친한 분들이라 안부를 전해드렸다.


점심을 해결하고 깜풀베쩩 교회에 도착하여 주일학교 캠프 둘째 날이 시작되었다.

우리팀은 사과풍선과 하트풍선을 최대한 많이 만들었다. 이윽고, 김만길 전도사님의 메시지와 선교사님의 통역이 시작되었다. 김만길 전도사님이 설교 전에 간단한 게임을 진행하셨다. 그리고 “스티커”선물로 아이들을 집중시켰다. 김만길 전도사님 특유의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하셨다. 말씀 후에 카드뒤집기와 인간다리건너기가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다. 간식 후 장애물달리기, 단체줄넘기, 풍선 만들기를 하면서 우리들은 결속하고 하나가 되어갔다. 정말 게임 하나 하나가 너무 현지상황에 안성맞춤이였다. 강보람 자매의 저력이 느껴진다. 강보람 짱^^ 찬양과 기도로 캠프 둘째 날 순서를 마치고 저녁 때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아이들을 배웅했다. 저녁식사를 배달시켜 먹고 깜풀베쩩 교회에서의 마지막 수요예배와 공연을 위해 준비하는 도중에 작년에 단기 선교팀들과 함께 사역했던 어떤 목사님 내외분들이 오셨다. 희주가 엄청 좋아하며 반긴다. 오전에 방문했던 블라깡 빠당 교회에서도 아이들과 성도들이 우리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오셨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음향을 작동하는 잭이 현지에 있는 것으로 알고 준비하지 않았는데, 잭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어 공연에 큰 차질이 생겼다. 그러나 이런 것과 아랑 곳 없이 아이들이 하나 둘 몰려왔고 시간이 되어 인도네시아 찬양은 시작되었다. 어떤 현지인 남자분이 찬양과 기도를 인도하는 데 너무나 간절해서 나에게도 그대로 전달될 정도였다. 인도네시아의 임하시는 성령님의 강력함을 느끼는 순간이였다.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셨는데 지금 인도네시아에서는 그 첫사랑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윽고 김만길 전도사님이 다시 한 번 메시지를 전하셨다. 드디어 공연시간이 되었다. 감사하게도 그런대로 공연이 진행할 수 있게 음향 쪽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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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제일 먼저 아카펠라를 불렀다. “GOD will make a way”  이윽고 자매들의 부채춤으로 성령의 바람을 일으키고, 형제들의 태권무로 마귀권세를 깨뜨렸다. 무언극 “하트”를 통해 사랑은 주는 것임을 함께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 멋진 연기를 보여주어 감동이 된다. 특히, 마귀역할을 한 상민이가 그곳에 모인 아이들에게 고함을 칠 때면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워 하는 지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웃고 즐기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전상민, 홧팅!”

모든 공연을 마치고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돌렸다. 이제 정말 아이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다. 조별로 사진을 찍고 안아주고 풍선하트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만길전도사님이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어 팬클럽을 연상케 한다. 풍선하트를 나눠주다가 찬양과 율동을 너무 예쁘게 했던 그 아이가 내게 “끼빠스, 끼빠스”하며 뭔가 아쉬워 하며, 쳐다보았다. 나는 “끼빠스”란 말이 부채란 뜻을 나중에 알아차리고 “tidak kipas(부채없다),  Maaf 마아프(미안해)”라고 말해주시까 옆에 계시던 희주가 좋아했던 그 현지인 목사님이 내가 인도네시아 말을 사용하는것이 신기했는지 껄껄 웃으신다. 나중에 알아보니, 원래 부채는 전체선물로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족해서 못 받은 아이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예쁜 노란 부채를 받지 못해 아쉬워 했던 그 아이가 남은 부채가 없는것을 알고 다시 밝은 모습으로 아이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눈다. 


아이들을 보내고 이틀 동안 함께 사역했던 현지인사역자들과 석별의 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갖었다. 다시 한번 현지인 사역자들을 소개하고 캠프에 대한 은혜들을 간증했다. 그리고 서로서로 하고 싶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팀 민수가 이틀 동안 만났던 아이가 헤어지면서 눈물을 흘리는것을 보고 20여년 동안 민수를 지켜주신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어 감사했다고 울면서 간증했다. 단기선교 준비 때 부터 부모님의 반대로 속상하지만 단기선교는 꼭 갈것이다고 말했었다. 민수는 지금 가족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민수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 아카펠라 멜로디 솔로를 얼마나 잘 하는지 처음에 깜짝 놀랬다.  최근에 이렇게 호소력 있는 영어찬양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민수야 너를 통해 하실 일 기대해 ^^  상민이가 인도네시아를 왜 좋아하는지 알것 같다. 상민이는 영적회복을 위해 인도네시아 단기선교를 참여했다고 한다. 상민이는 김규식선교사님 자녀들과 특별히 친해보였다. 인도네시아 아이들과 언제나 잘 지냈다.

현지인 청년 중에서 한 형제가 나는 언제나 우리처럼 다른 나라에 가서 선교하며 살게 될 것인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형제에게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축복한다./// 우리는 이 교회의 부흥과 아이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시도록 함께 합심해서 기도했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서로서로 hug하고 악수하며 서로를 축복했다. “예수님 안에 우린 형제자매”


숙소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인도네시아 시장에 가 과일을 사왔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현지인 사역자중 한 자매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자매는 28세이고,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배우자가 믿음이 좋은 사람이면 된다고 한다. 예수님의 은혜로 모든 가족이 다 크리스챤이 되었다고 한다. 나도 언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간증했다. 감사하게도 인도네시아에서는 콩글리쉬도 서로 통했다. 또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니까 의사소통이 훨씬 잘 진행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 통해야 소통이 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숙소로 돌아온 후, 우리들은 다음날 일찍 까리문 섬으로 이동 일정이 있어서 짐을 정리한 후, 샤워하고 잠을 잤다.


네째날(7/8)


간밤에 인도네시아 모기에게 뜯겨 잠을 설쳤다고 김영안집사님이 하소연한다. 인도네시아 모기도 먹고 살아야지요, 여기까지 와서 너무 야박하면 되나요?!!!@ 바퀴벌레한데 물리지 않는 것이 주의 은혜지요... 김규식선교사님이 부탁했던 배낭을 가져오셨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인도네시아 단기선교의 가장 난코스인 밀림의 섬을 향해 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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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서로 서로 담소를 나누며 바다의 멋지고 시원한 광경을 만끽했다. 칼슘보충을 위해 멸치와 고추장을 공유했다. 희주가 제일 잘 먹는다. 잘 먹어주니 좋다. 모기와의 전쟁에서 어제 밤 잠을 설친 김영안 집사님과 그 파트너 정양선강도사님이 배 안에서 낮잠을 즐기는지 도통 볼 수가 없다..  Z Z Z Z


드뎌 까리문섬에 도착했다. 어디쯤 깜풍뜽아 교회가 있는지 잘 모르지만 우리는 찬양을 부르며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옮겼다. 가는 도중에 신진대사에 작은 불이 들어온 남자가 세 명 있었다. 우리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작은 불을 끄는 스릴을 맛보고 있는데 현지인 아줌마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미소를 짓는다. 이를 어째 ^^

한참을 가다가 우리와 함께 가는 현지인 남자 분에게 인사를 했다. 선교사님이 깜풍뜽아 교회의 전도사님이라고 했다. 인도네시아 밀림에서 하나님이 기름 부어 주셔서 그런지 그 형제분과 말이 잘 통하는 은혜가 있었다. 선교지에서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마음이 통하고 언어가 통하는 일들이 종종 있는 것 같다. 어쨋든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며 웃다보니 어느새 깜풍뜽아 교회에 도착하였다. 밀림 속에 있는 교회치곤 꽤 잘 지어진 건물이였다. 부산의 어느 교회 장로님이 감동받아 헌납했다고 한다. 무슨 이유인지 기분이 참 좋았다. 찬양을 부르고 싶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현지인 목사님이 처음 듣는 찬양이 너무 좋으셨는지 가사를 영어로 적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점심 식사가 시작되어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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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모처럼 여유로움을 즐겼다. 오후 3시쯤에 주일학교 아이들 10명 정도와 함께 즐거운 게임과 가면 만들기, 비누방울 불기 등을 하며 행복한 팀웍을 이루어갔다. 아이들과 즉석사진도 찍고 동네 엄마 아빠들도 가면 쓰고 즉석사진 찍어달라고 한다. 어느 현지인 새댁이 아이를 안고 찾아와서 기도 받으러 왔다. 선교사님과 우리들은 함께 아이와 엄마를 위해 기도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우리팀들을 위해 닭을 삶고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셨다. 나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햇반이 3개 남아 있었다. 그래서 정리한다는 차원에서 선교사님께 햇반을 데워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선교사님은 현지인이 저녁을 준비했으니, 그냥 선물로 드리던지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마, 현지인을 배려해서 그렇게 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난 한국 햇반이 너무 먹고 싶었다. 잠시 후에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살짝 햇반을 들고 나와 현지인 부엌으로 갔다. 부엌은 전기불은 없고 나무로 불을 지펴 음식을 하고 있었다. 여자분들이 세네명 있었다. 나는 넉살좋게 한국 햇반을 소개하고 선물이다고 말하고 한 개만 5분정도 데워달라고 부탁했다. 한분이 알아들었다는 듯 물을 데웠다. 그리고 내게 한국 햇 반 한 개가 얼마나 하는지를 물었다. 7천루삐아(한국돈 700원)이라고 하니까 그 돈이면 인도네시아 쌀 한가마 값이라고 했다. 햇반이 적당하게 데워졌다. 하지만 우리 팀들이 식사를 다 마쳤기 때문에 나는 미안하지만, 이곳(부엌)에서 식사할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흔쾌히 식사하라고 하셔서 현지인 남자분과 함께 맛있게 식사를 하였다. 규칙을 어기긴 했지만,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


이윽고, 준비한 공연을 보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몰려왔다. 부엌에서 만났던 아주머니들도 예배를 사모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 마음으로 함께 어우러져 찬양과 율동을 함께 하며, 서로 서로 인사하는 시간을 갖었다. 이윽고 현지인 아이들의 율동과 특송 시간이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함께 나가 현지인 아이들과 함께 율동을 따라했다. 강도사님의 메시지와 선교사님의 통역이 말씀을 사모하는 현지인들에게 선포되었다. 함께 기도하는 시간에 부엌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이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마지막 공연이 진행되었다. 우리들은 상대적 여유를 가지고 다른 지체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기 역할을 담당하였다. 다들 잘해주었다. 특히, 무언극 할머니 역할을 김영안집사님이 실감있게 하는 것을 보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남우주연상을 드립니다. 창규의 환자 연기력이 이제 수준급이다. 진짜 환자 같다. 창규 얼굴이 점점 더 멋있어 지고 있는 것을 보며 우리 모두는 감사했다. 아카펠라를 끝으로 대단원의 공연이 마무리 되었다. 우리는 한분 한분 악수하며 작별인사를 하였다. 모나미 볼펜 한 자루씩을 선물로 드렸다. 모든 순서를 마치고 우리들은 옹기종기 앉아 담소를 나누며 휴식을 가졌다. 김규식선교사님이 "World Christian"에 대해 우리들에게 도전하셨다. 청년들의 눈빛이 빛나는 것을 느꼈다. 막간을 이용해 나는 인도네시아 화장실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작년 인도네시아 단기선교 때에 자매들 중 상당수가 일주일 내내 화장실 출입을 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선교지 현장에서 오는 긴장감 때문인지 나도 지금까지는 별 소식이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날 저녁에 소식이 왔다. 덕분에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인도네시아 화장실 문화가 체질에 맞는 것 같다. 시골출신이라 그런가? 간식으로 라면과 과일을 맛있게 먹었다. 충분한 휴식이후에 우리는 마지막 날 밤이라는 특별한 시간을 특별하게 보내길 원했다. 늦게까지 찬양과 기도를 해도 괜찮다는 선교사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11시부터 찬양하며 기도했다. 만길 전도사님이 기도회를 인도하셨다. 체력은 딸렸지만, 감사했다. 밤12시 기도회가 마치고 나눔의 시간을 진행하기 위해 나는 강대상을 앞으로 밀고 나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일은“강대상 사건”으로 기록될 만큼 우리 팀에겐 쇼킹한 것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역 마지막 날 피곤한 몸으로 1시간 기도회를 갖고 취침을 기대했는데 갑자기 강대상을 세우고 앞으로 한 사람씩 나와 선교지에서 받은 은혜를 나누라고 하니 좀 놀랜 모양이었다. 김영안집사님의 말을 빌리자면, 극기훈련이였다고 했다. 하하 그러나 실제로 나눔의 시간은 참 귀하고 은혜롭게 진행되었다. 강대상 멍석을 깔고 했던 것이 주효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름대로 그 사람만의 색깔을 들려줬다. 3분 이내로 제한했지만 속수무책이다. 할 말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은지와 상민이가 작년에 선교 다녀와서 성도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은 것이 상처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번 단기선교를 통해 회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은지의 예쁜 눈물을 보면서 은지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되어 감사했다. 지혜로운 강보람 자매가 한 사람씩 칭찬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섬세한 관찰력에 박수를 보낸다. 한 가지 옥에 티라면 선교사님이 너무 피곤하셔서 꾸벅꾸벅 조시는데, 별도의 방이 없어 먼저 편히 쉬시게 못한 점이다. 선교사님은 우리의 나눔이 다 끝날 때까지 끝까지 인내해야만 하셨다. MAAF(미안합니다)...

짧은 합심기도와 한마디씩 돌아가며 기도 하는 것으로 마지막 날 밤 “극기훈련”을 마쳤다. 선교사님의 발전기 동력 차단 명령이 있은 후, 우리는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 때가 새벽 2시쯤 된 것 같다. 모 집사님의 코고는 소리에 우리는 억제했던 웃음을 연속으로 터트렸다. 왜 그렇게 웃기는지 웃음이 자꾸만 나왔다. 거기에다가 김영안집사님의 한 마디는 불에다 기름을 붇는 효과가 있었다. “어이! 내무반장 밖에 내보내!”그 순간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우하하하” 폭소가 연발했다. 조금 있다가 반딧불이 깜깜한 예배당에 들어와 자매들에게 한동안 소동이 일어났다. 아! 재^ 밌^ 다.^....  그러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다섯째날(7/9)


다음날 새벽 5시 기상이다. 바탐으로 이동하는 첫배를 타야했다. 선교사님이 갑자기 무서운 소대장님으로 변해 계셨다. 그 이유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어제 밤 우리 때문에 혹독한 극기 훈련을 치루셨기 때문이 아닐까? 마치 죄인처럼 우리는 숨소리를 죽인 채 새벽 미명에 강가로 이동했다. 정확한 정보인지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우리가 늦게 일어나 첫배를 놓쳐다는 갑설이 있다 우리는 배를 기다리며, 1시간 정도를 그렇게 벌을 섰다. 물론 나는 막간을 이용하여 그날 Q.T를 하였다. 마침내 배가 왔고, 우리는 바탐에서 짐을 챙겨 싱가폴로 이동하기 위해 유람선 타는 곳으로 갔다. 현지인 사역자인 목사님과 전도사형제님이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함께 사진을 찍고 다시 한 번 아쉬운 포옹을 하였다. 함께 했던 시간들이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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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 안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우리는 싱가폴로 향했다. 배안에서 정훈이랑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부족한 수면도 보충했다. 싱가폴에 도착했다. 이동하는 차안에서 조별로 미션과 예산이 주어졌다. 일단 점심식사는 한 장소에서 조별로 먹고 쇼핑하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센토사를 찾아가 THE MERLION(머리는 사자, 몸은 물고기)앞에서 사진을 찍고 오후5시까지 약속장소인 PALAWAN BEACH로 집결하는 것이다. 우리 조는 강보람, 이솔희, 임정훈, 김진호였다.

정훈형제와 솔희 자매는 작년에 한번 와 봐서 여유가 있었다. 우리조는 점심식사를 맛있게 먹고 쇼핑장소인 옆 건물로 갔다. 옆 건물로 이동하는 시간이 한 15분 걸렸다.(휴~) 특이한 것은 옆 건물로 이동할 때 한국처럼 지하도나 횡단보도가 없어 사람들이 차가 안오는 사이에 후다닥 무단횡단했다. 우리도 따라서 후다닥 했다. 그런대로 재밌다. 선물은 3개에 만원짜리 손목시계를 자매들이 골라줘서 잘 살 수 있었다. 나중에 아내와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다. 우리 조 청년들에게 선물 한가지씩을 사주고 싶어 예쁜 손가방을 골랐는데 결정적으로 카드결제가 되지 않아 보람자매가 현금을 내고 말았다. 이런 낭패가 있나? 그때는 왜 보람자매한데 현금을 빌릴 생각을 못했는지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목이였다. 보람자매! 고의는 아니였어! ! !

시간이 없어 20분 쇼핑하고 급히 나왔다. 센토사를 가기 위해 원래는 지하철을 탈 예정이였는데 갑자기 2층짜리 버스를 타고 싶다고 계획을 급선회하는 바람에 해당 버스 찾으려고 그야말로 난리법석을 치루고 우여곡절 끝에 센토사 방면 65번 버스를 탈수 있었다. 나는 우리 조가 많이 늦어 선교사님이 걱정할까봐 전화를 드리자고 하는데 청년들은 믿는 구석이 있는지 괜찮다고 한다. 버스 안에는 노선표도 없고 방송도 하지 않아 도대체 어디에서 내려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목마른 사람이 우물판다고 1층으로 내려가 버스 기사님께 용기를 내어 물어보았다. “ Excuse me, I am going to sentosa, How long does it take ?." 그러자, 중국인으로 보이는 버스 기사분이 이 버스가 센토사로 직행하지 않으니, 환승해야 한다고 했다. 2층으로 다시 가서 정훈이에게 말하자, 알고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는 눈치였다. 잠시 후에 하버 프론트 근처라며 내리자고 했다. 버스 기사분이 나에게 이쪽에서 환승하라고 눈치를 보냈다. 나는 잘 알겠다는 표시를 보내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정훈이가 기억을 더듬으며 rail 매표소를 찾아냈다. 그래서 우리는 sentosa pass를 구입하여 레일을 타고 sentosa playground로 향했다. 미션수행을 위해 The Merlion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하고, 집결장소인 Palawan Beach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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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집결시간보다 1시간 늦게 도착하여 모든 팀들이 해변가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선교사님께 ”좀 늦었습니다“라고 말씀 드리고, 함께 초저녁의 해수욕으로 피로를 풀었다. 해변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상민이가 늦게 도착한 솔희 자매를 물속에 풍덩 빠뜨리자, 어느선가 쏜살같이 달려오는 사나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임정훈! 솔희 자매를 빠뜨린 것에 대한 응징인지 사정없이 상민이를 물속에 패데기 친다. 다른 형제들이 막내 주희를 억지로 물속에 빠뜨렸다. 갈아입을 옷이 없었던 주희는 토라져서 한동안 말을 안한다. 하지만 걱정을 덜어주려는지 다시 밝아졌다. 주희가 어려운 단기선교 사역을 잘 감당하고 견뎌준 것이 고맙다. 아무튼, 이런데 오면 형제들이 자매들을 물속에 빠뜨리는 것이 묵시적으로 예의라면 예의라서 그날 모든 자매들은 물 세례를 받았다.

한 가지 해명할 것은 해수욕장에 와서 수영복을 입고 수영한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 나중에 모자이크 처리 되어 약간 민망했다. 역시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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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을 마치고 저녁7시쯤에 창이공항으로 향했다. 한국 귀국탑승시간이 22:35분. 공항 휴게실에서 햄버거와 음료수로 저녁을 대신했다. 선교사님이 선교사님 테이블 쪽으로 나를 부르신다. 화해(?)무드 속에서 먹는 햄버거가 유달리 맛있다. 희주가 음식 주문을 도맡아 하면서 “우리교회 남자들은 다들 뭐하는지 몰라”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희주는 평상시에는 잘 몰랐는데 선교지에 와 보니까 행동도 빠릿빠릿하고 당찬 데가 있었다. 언니와 동생사이에서 본능적으로 단련되지 않았나 싶다. 암튼 희주가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 주어 기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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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자매가 마지막까지 SPARE SEAT를 기다렸지만, 결국 자리가 없어 우리들보다 하루 늦게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청년들의 선배로서 지혜자매는 궂은 일 들을 솔선수범하며 잘 감당해주었다. 또한 선교기간동안 선교사님의 말동무가 되어 주어 생각지 못한 부분을 채워주었다. 혼자 남게 된 것에 대해서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이제 김규식선교사님과 작별할 시간이 되었다. 단체사진을 찍고 선교사님이 기도해주셨다. 나는 선교사님을 안아드리고 청년들에게 “hug 하세요!”라고 말했다. 청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선교사님과 hug하면서 석별의 정을 나눴다. 어떤 자매들의 눈가엔 눈물이 보였다. 정양선강도사님이 김규식선교사님께 해성교회의 후원헌금을 전달했다. 나도 김영안집사님의 배려로 선교사님께 “차비하세요”하며 주머니에 살짝 넣어드렸다. 탑승시간을 기다리며, 우리들은 잠시 쇼핑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잠시 여유를 부리는 사이에 속히 비행기에 탑승하라는 방송소리가 들렸다. 쇼핑맴버 3명은 그 때 발이 보이지 않게 뛰었다.

무사히 탑승한 후, 긴장감이 풀어지면서 오는 피로감으로 좌석에 앉자마자 곤히 잠이 들었다./////////


이번 인도네시아 단기선교를 다녀오면서 우리들에게 큰 은혜로 함께 하신 하나님아버지께 먼저 영광을 돌립니다. 이번에는 건기 때 임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비를 내려주셔서 더위 때문에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선교 때마다 가장 어려운 음식문제도 괜찮았습니다. 김규식선교사님이 멋진 외모만큼이나 선교지에서 사역을 즐겁게 하시는 것이 보기 좋았습니다. 현지사역자들과의 소중한 만남과 작은 교제들이 소록소록 생각이 납니다. 함께 신나게 율동하며 찬양했던 어린친구들이 예쁜 모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인도네시아 과일 중에 백미는 람부탄입니다. 실컷 먹었습니다. 화장실문화체험도 정겹습니다. 인도네시아 현지인 2명에게 복음제시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동남아시아에 복음의 문이 열려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추수 할 것이 희어져 추수할 일꾼을 보내주시길 기도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 해성교회 2010년 인도네시아 단기 선교팀 17명과 함께 했던 순간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한 분 한 분을 좀 더 이 지면에 소개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또한 청년부장으로서 청년들과 더 많이 친해 질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 제일 큰 수확이고, 기쁨입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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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간 지체들 : 정양선 김만길 김진호 김영안 박정연 강보람 김민수 김주희 김희주 신지혜 오보람 이솔희 임정훈 양은지 장창규 전상민 최지수(17명)

 

“이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계 7 : 9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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